내년 건강보험료율 책정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큰 걸림돌을 만나 표류하고 있다. 정부의 건보 보장성 강화 등 ‘문재인케어 플러스’ 정책 실현을 위해 올해도 3% 이상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경영난에 빠진 사용자와 자영업자들은 임금 주기도 벅찬 현실을 내세워 인상률 최소화를 주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오는 2021년 요양급여비용과 건강보험료율 결정 등 주요 안건 처리에 나섰지만 보험료율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근로자대표로 참여한 한 위원은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소위에서도 아직 진지한 검토를 하지 못했다”며 “한두 달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변수로 작용했다. 경기가 바닥을 찍으며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1%(국제통화기금)로 뒷걸음질치는 상황에서 사용자와 자영업자 등 가입자대표들은 건보료 인상에 일제히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기업들로서는 임금을 주기도 어려운 비상상황”이라며 “국민이나 기업도 안심과 안정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고 건보 재정의 누수를 막는 등 정부가 효율화 작업에 더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면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일정 수준 이상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코로나19로 대구 등지와 저소득층의 건보료를 깎았고 감염병 대응에도 적잖은 지출이 발생한다는 점, 각종 보장성 확대가 시행돼 건보 지출이 매년 증가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보 지출이 올해 76조7,000억원에서 내년 81조7,984억원으로 훌쩍 뛰어오르며 재정적자도 2020~2021년 3조8,000억원에 이르는 만큼 계획대로 인상하지 않는다면 재정안정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년에는 올해보다 경제사정이 좀 더 나아지는 만큼 내년 요율은 올릴 필요가 있다”며 “다만 기존 계획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메르스가 유행한 이듬해인 2016년 보험료가 0.9% 오르는 데 그쳤던 사례가 언급되지만 당시 건보 적립금만 20조원이 넘어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날 건정심은 보험료 인상률 산정의 토대가 될 내년 요양급여비용을 올해보다 1.99%로 올리기로 했다. 앞서 건보공단과 협상이 결렬된 병원과 의원, 치과 인상률은 각각 1.6%, 2.4%, 1.5%로 공단 제시안대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재정은 약 9,416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