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인국공' 사태, 본질을 봐야 한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표면적으론 '취준생 기회박탈'

근본 원인은 경직된 고용제도

정부, 을끼리 싸움 만들지 말아야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청춘 남녀의 결혼율을 높이기 위해 일단 교제를 했으면 결혼을 강제하도록 하는 법을 만든다고 하자. 거기에 한번 결혼하면 절대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조항도 넣어 둔다고 해보자. 물론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이런 법에 찬성할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유로운 선택권을 갖는 인간 본연의 권리에 대한 침해일 뿐 아니라 이 법이 시행되고 나면 그 어떤 선남선녀도 선뜻 교제하기에 나서지 않으려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법이 버젓이 횡행하고 더욱 횡행할 조짐을 보인다. 바로 고용시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현행 노동 관련 법령에 의하면 일단 고용관계가 성립하면 사업자와 근로자는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 남녀가 가정을 이뤘다가도 피치 못해 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사람을 채용할 때는 그만큼의 유연성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혼에 주춤하는 남녀처럼 기업은 쉽게 정규직을 채용하지 못하고 가능한 비정규직으로 두려 하는 것이다. 업무의 연속성, 기능의 숙련도 확보라는 면에서 이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진심으로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들의 공사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문제는 일차적으로 취업준비생들의 공정한 취업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에 있다. 하지만 그 깊은 뿌리는 경직된 고용제도에 있다. 정부·여당은 청년들의 분노를 폄하하며 “험한 일 하던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잘못된 특권의식의 발로”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전에 왜 1,900명이나 되는 보안검색요원들이 지금까지 비정규직으로 있어야 했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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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의 유연성’이라는 말에서 비인간적 자본주의의 횡포만을 떠올린다면 그건 너무 단견이다. ‘해고의 유연성’은 다른 말로 ‘채용의 유연성’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직업에의 입·출입이 보다 자유롭다면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아진다. 이 경우 자신의 노동에 대한 협상력이 높아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사람을 채용할 때 과도한 법적 의무를 지움으로써 기업은 정규직 한 명을 고용할 때 이혼이 절대 금지된 곳에서 결혼하는 남녀처럼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공항공사 보안검색요원 1,900명 중에는 이미 정규직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지금은 비정규직이지만 자기 적성에 맞고 수입도 더 좋은 다른 직업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걸 알고 언제든지 툴툴 털고 이직할 준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어떤 면에서는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직원 역시 우리 사회 전반의 경직된 고용제도의 피해자인 것이다. 소위 ‘을’과 ‘을’의 싸움을 붙인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정부·여당, 그리고 이미 막강한 권력이 돼버린 귀족 노조가 장악한 민주노총이다.

중국 역사를 보면 못된 무리가 즐겨 쓰는 책략 하나가 있다. 작란(作亂), 즉 천하를 우선 자기가 어지럽혀 놓은 다음 이 어지러운 천하를 평정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뻔뻔스러운 잔꾀다. 고용 병목현상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밖에 없도록 해놓고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위선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 소위 이번의 ‘인국공’ 사태다. 이제 많은 국민의 눈에 누가 작란을 벌여 자기들만의 밥그릇을 챙기며 장난질을 치기 시작하는지 명확히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기생충’ ‘빨대 계급’이라고 불리는 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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