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충격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했던 지난 3월, 국내 한 핀테크 업체의 침착한 대응에 외신들이 집중했다. 3월 한 달간 이 업체에 몰린 대출 신청액만 1조원. 전년 동기 대비 123% 늘어난 규모였다. 몸집 키우기에 욕심을 내볼 만했지만 업체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대출 승인율을 평소보다 30%가량 줄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경제위기 상황일수록 부실대출 최소화와 리스크 관리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은 핀테크 기업의 코로나19 대응 사례는 외신을 통해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바로 국내 1세대 개인 간 거래(P2P)금융 업체 ‘피플펀드’의 얘기다.
코로나19로 인한 저축은행과 캐피털의 대출 축소로 P2P금융 업계로 넘어온 대출 수요를 감당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김대윤(39) 피플펀드 대표는 30일 서울경제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투자 유치차 기관을 만나면 P2P금융은 금융위기를 거쳐야 제대로 된 금융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코로나19로 모멘텀이 앞당겨졌다”며 “올 1월부터 여행업종에 대한 신규 대출을 줄인데다 3월부터는 대구·경북 지역의 주택담보대출과 개인신용대출에 대한 관리를 철저하게 진행한 덕에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피플펀드는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위축에도 리스크 관리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5월 말 기준 연체율은 0.92%로, 피플펀드 대출자 평균 신용등급이 4.7등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高)신용자 중심인 은행의 리스크 대응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지 않다. 올 1·4분기 은행 연체율은 0.44%였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 연체율(4.1%)보다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피플펀드가 뛰어난 리스크 관리 대응력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체 신용평가모형이 있다. 피플펀드 역시 사업 초반에는 여타 P2P금융 업체처럼 저축은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용평가모형을 만들었지만 주요 고객 자체가 달라 산출 값이 부정확하다는 문제를 파악했다. 이에 김 대표는 당장 대출을 내주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많은 고객 데이터를 모으는 것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했고 그 결과 1년6개월 만에 자체 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지난 4년간 축적한 30만건의 온라인 심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신용평가모델 3.0을 가동 중이다.
김 대표가 이처럼 자체 신용평가모형 구축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2금융권의 고질적인 고금리 대출을 은행과의 협업 대출 구조인 피플펀드 대출로 대환하겠다는 한결같은 목표 때문이다. 피플펀드 대출 신청 고객의 70%가 저축은행 대환 고객이라는 점에서 1금융권과 2금융권 등 비은행권 사이의 금리 단층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제대로 된 중금리 상품을 내놓으면 틈새시장인 ‘1.5금융’ 시장을 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국내 개인신용대출 시장은 연간 총 150조원 규모로, 이 가운데 1금융권이 70조원을 차지하고 이보다 더 큰 규모인 나머지 80조원은 비은행권에서 소화하고 있다”며 “비금융권 대출자 대부분은 은행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어쩔 수 없이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금융권에서도 고금리 대출 관행을 끊어낼 메기 역할이 필요한데 현재 15% 이하의 중금리 대출을 진행하면서 부실관리까지 할 수 있는 업체가 없다”며 “2금융권 전반의 높은 비용 구조와 차별화된 신용평가모형 부재 문제를 기술로 해결해 80조원 규모의 비은행권 신용대출 시장을 혁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대출뿐 아니라 투자 포트폴리오도 강화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P2P금융업의 신뢰도를 제고한다는 판단에서다. 피플펀드는 지난해 홍콩 CLSA로부터 38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금융기관이 국내 P2P 업체가 취급한 개인신용대출채권과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유동화한 상품에 투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피플펀드는 국내외 금융기관 6곳과 투자를 논의하고 있다. 연내 최소 2개 기관의 투자 유치를 확정해 기관 투자와 개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진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금융시장 경색이 일어나는 글로벌 상황에서도 피플펀드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고 해외 투자가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며 “피플펀드 투자상품의 핵심은 고객에게 6~7%의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으로, 이 같은 안정성이 성장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올 2월까지 2대 핀테크산업협회장으로 활동하며 업계를 대표해 목소리를 냈던 김 대표는 부실과 연체, 배임·횡령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 업계에 대한 애정 어린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첫째도, 둘째도 리스크 관리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대출을 진행하다 보면 연체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연체가 발생해도 연체이자를 잘 내고 원금을 상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이 연체가 추가 리스크로 번지는 상황이 생긴다”며 “연체에 당황하지 말고 자산들을 촘촘하게 관리하다 보면 위기를 넘어 다시 뛰어오를 기회가 온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는 8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P2P금융 업계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만큼 금융기관으로서의 신뢰 제고에도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판 뉴딜 정책의 한 축인 비대면 산업 육성에서 핀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만큼 올해를 P2P금융 원년으로 삼고 전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당국과 업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협조하느냐에 따라 P2P금융업의 지형이 달라질 수 있다”며 “온투법 등 금융당국의 방향성 덕분에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할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업계도 당국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첫 단추를 잘 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플펀드는 온투법을 발판 삼아 1금융권과 2금융권 사이의 ‘틈새시장’인 1.5금융을 개척하고 선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적절한 수준의 이자율을 기반으로 한 대출을 공급해 비은행권 시장의 선두주자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해결과제로 봤다. 김 대표는 “한국이 수출형 국가라는 점에서 국가 전반적으로 코로나19 타격이 불가피한데 핀테크 등 규모가 작은 금융사들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생사가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를 선제적으로 하고 있다”며 “8월 시행을 앞둔 온투법 등록을 마무리하고 금융당국에서 원하는 금융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신발 끈을 조일 것”이라고 말했다.
He is... △1981년 서울 △1997년 대일외고 △2000년 고려대 경영학과 입학 △2007년 맥쿼리은행 기업금융부 투자은행 부문 △2008년 베인앤컴퍼니 서울사무소 및 보스턴 본사 △2011년 소프트뱅크벤처스 책임심사역 △2015년 피플펀드컴퍼니 창업△2018~2020년 제2대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 △2019년 제4회 금융의 날 ‘금융혁신 부문’ 국무총리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