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 첫 적용...'불완전 판매' 사모펀드에 경종

[금감원 "라임펀드 100% 배상"...전액 계약취소 결정]

투자자에 잘못된 핵심정보 제공

당국 "판매사 부실인지 여부 무관"

은행·증권사 수용여부는 미지수

"손실 본 他 사모펀드 투자자까지

원금반환 요구 거셀것" 지적도




금융감독원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판매사가 투자원금 전액을 투자자들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분쟁조정에서 100% 반환 결정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최근 잇따르는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고에서 판매사의 책임을 엄중히 물은 결과로 다른 상품 배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향후 손실이 난 사모펀드 투자자들의 원금 보전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는 점에서 판매사를 중심으로 우려도 제기된다.

금감원은 1일 “지난달 30일 진행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서 지난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민법 제109조)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분조위는 계약체결 시점에 이미 투자 원금의 상당 부분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운용사는 투자제안서에 수익률 및 투자위험 등 핵심정보를 허위·부실 기재했으며 판매사는 투자제안서 내용을 그대로 설명해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했다고 판단했다. 금융투자상품 분쟁조정 사례 중 계약을 취소하고 펀드 판매계약의 상대방인 판매사가 투자 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핵심정보 잘못 전달해 투자자 착오 일으켰다”=금융당국이 라임무역금융펀드 판매사에 대해 초유의 ‘100% 전액 반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 사태를 단순 ‘불완전 판매’가 아닌 사실상 ‘애초부터 잘못된 판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판매 시점에 이미 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질치고 있었음에도 운용사와 판매사가 이 같은 핵심정보를 투자자들에게 허위로 전달한 점을 문제 삼아 계약 자체를 취소시켰다. 무역금융펀드를 민법상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 대상’으로 판단한 셈이다. 민법상 계약 취소가 가능한 경우는 ‘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민법 110조)’와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109조)’다.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란 애초에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만큼 중요한 정도의 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계약 자체를 취소시킬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라임자산운용은 2017년 5월부터 ‘플루토 TF-1호 펀드’ 투자금과 신한금융투자의 총수익스와프(TRS) 자금을 ‘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그룹(IIG) 펀드’ 2개 등 해외무역금융펀드에 투자했다. 라임운용과 신금투는 2018년 6월께 IIG 펀드의 부실을 최초로 인지했고 같은 해 11월 펀드 사무관리사로부터 펀드의 부실과 청산절차 개시 통지를 받았다. 분조위에 따르면 2018년 11월 이후 무역금융펀드의 손실률이 76~98%까지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라임운용 측은 핵심 정보인 수익률 및 투자위험과 관련해 총 11가지의 중요 내용을 투자제안서에 허위로 기재했다. 또 판매사들은 이를 검증 없이 그대로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판매했다. 김철웅 분쟁조정2국장은 “판매사들이 펀드 부실을 인지했는지 여부는 착오취소 판단의 요소가 아니다”라며 “만약 인지하고 팔았다면 검사 제재나 형사처벌로 다룰 문제”라고 설명했다. 하나은행·미래에셋대우와 같은 판매사들조차 속아서 판매했다고 하더라도 계약 취소를 해주고 속인 상대방을 대상으로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신금투의 경우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부실을 알고도 팔았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형사처벌 및 행정제재를 받게 된다.


또한 판매자의 허위 투자정보 설명, 투자자 성향 임의 기재 등으로 투자자들이 합리적으로 투자판단을 할 기회를 박탈한 만큼 투자자에게 중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판매사가 투자원금 전액을 반환할 것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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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 난 다른 사모펀드 투자자 원금반환 요구 거세질 듯=하지만 조정안은 강제성이 없어 판매사가 이를 수락할지는 미지수다. 판매사들은 “결정문을 수령한 후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판매사들도 사기의 피해자인데 전액을 돌려주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경영진과 이사회에서 법원으로 가서 판단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20일 이내 판매사들이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결국 투자자들은 소송을 통한 구제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손실이 난 다른 사모펀드 투자자들까지 원금 보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조정안은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플루토 TF-1호에 대한 결정이다. 판매사가 권고안을 수락할 경우 반환되는 금액은 약 1,611억원으로 이는 라임자산운용이 판매한 펀드 1조6,700억원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금감원은 이번 결정이 다른 사모펀드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있다. 판매 당시 설명대로 펀드가 투자한 자산 가격 하락으로 손실이 날 경우에는 불완전 판매를 다툴 여지는 있어도 계약 취소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라임의 다른 사모사채펀드나 메자닌펀드의 경우 손해 미확정으로 분쟁조정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산 가격 변동에 따라 손실이 발생한 사모펀드들과 이번 무역금융펀드와는 사례가 다르다”며 “다른 펀드들의 경우 손해가 확정되면 불완전 판매 여부를 다툴 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지혜·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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