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사모펀드 사고가 터지는 가운데 이미 1조 4,000억원 가량의 돈은 이미 날아간 것으로 파악됐다. 환매중단 사태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은 뒤늦게서야 향후 3년간 전체 1만개 가량의 사모펀드에 대한 전수조사라는 칼을 빼 들었다. 3일 성일종 미래통합당의원실과 자산운용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26곳의 전문 사모운용사들이 총 298개의 사모펀드에 대한 ‘환매연기 특정사유 발생보고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운용사들은 펀드 만기가 지났는데도 투자자들의 돈을 돌려주지 못하면 2주 안에 이를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이 중 22개는 이후 상환이 완료됐지만 276개는 여전히 미상환 상태다.
276개 펀드의 설정 원본액은 3조6,097억원, 평가액은 2조2,423억원으로 나타났다. 약 40%에 해당하는 1조3,674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모펀드 손실 |
지난달에 추가로 환매가 중단된 옵티머스펀드와 젠투펀드, 라임펀드외에 다른 무역금융펀드 등의 약 3,000억원을 합치면 약 4조원 규모의 펀드가 상환이 멈췄다. 게다가 이들 펀드의 시리즈 펀드들도 줄줄이 연내 만기가 돌아올 예정이어서 5조원 이상이 사모펀드에 묶일 수 있다는 우려스러운 전망도 나온다.
운용사별로 보면 라임자산운용펀드가 현재로서는 가장 많이 환매가 중단돼 있다. 부실불법 운용 문제가 크게 불거졌던 무역금융펀드·사모사채펀드·메자닌펀드 외에도 미국 부동산펀드, 코스닥벤처펀드 등도 덩달아 환매가 연기돼 있는 상태다.
또 연초 1,800억원대의 환매중단을 선언했던 알펜루트자산운용의 펀드들 역시 여전히 상환을 못해 투자자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이외에도 갖가지 다양한 사모펀드들이 환매 중단 상태에 빠졌다. 자비스자산운용·헤이스팅스자산운용·JB자산운용에서 내놓았던 P2P업체에 투자하는 펀드들도 다수가 극심한 자산부실로 상환불능 상태다. 대신자산운용·플랫폼파트너스·피델리스자산운용 등이 내놓은 무역금융펀드들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채권회수를 못하고 있다. 현대자산운용이 내놨던 중국 하이난항공(HNA)그룹 채권투자펀드도 기업이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상환을 못하고 있다. 글로벌원자산운용이 출시했던 육류담보대출펀드나 인도네시아 주식 담보대출 펀드도 손실을 내면서 만기를 연장한 상태다.
'뒷북' 전수조사 나선 금융당국 |
금융당국이 사모펀드의 사고가 잇따르자 뒤늦게야 전수조사 방침을 세웠다. 워낙 방대한 숫자의 운용사와 펀드가 있다 보니 판매사들과 협업하면서 금융감독원 내에 별도 조직을 신설해 운용사에 대한 현장점검도 동시에 진행한다. 펀드조사는 판매사가, 운용사 조사는 당국이 맡는 식이다. 이를 통해 시장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부실 운용사를 걸러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같은 뒷북 조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근본 원인임에도 이를 놔누고 조사만 강화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제도 개선 없이 점검만 해서는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 역시 사모펀드 적격투자자 요건 완화, 사모펀드 운용사의 최소자본요건 완화, 등록제 전환 등을 최근 펀드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금융시장을 불량배들의 놀이터로 만들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제도 개선 없이 진행하는 대대적인 점검은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불만도 나온다. 국내의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행법이 펀드 판매로 인한 투자자 피해의 책임을 판매사에 일방적으로 지우고 있는데 운용사 규제 없이 전수조사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판매사 입장에서는 한동안 사모펀드 판매를 꺼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