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형 은행주와 항공주를 팔아치우며 보수적인 행보를 보인 버핏 회장이 미중 무역합의와 직결된 천연가스에 대규모 투자에 나서자 미국 월가는 그 배경과 성과 전망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손실을 감수하고 대량 매도한 항공주 등이 최근 경제활동 재개 등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체면을 구긴 버핏 회장이 이번 투자로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높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버핏 회장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는 도미니언에너지의 천연가스 운송·저장 부문 자산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거래금액은 부채 57억달러를 포함해 총 97억달러(약 11조6,080억원)에 달한다. 통신은 버크셔해서웨이가 지난 2016년 미국 항공부품 업체 프리시전캐스트파츠를 372억달러에 인수한 후 최대 규모의 투자라고 평가했다. 이번 인수는 미국 규제당국의 심사를 거친 뒤 올해 4·4분기 무렵 최종적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거래가 완료되면 버크셔해서웨이의 미 천연가스 시장점유율은 현재 8%에서 18%로 늘어나게 된다.
도미니언에너지는 1,000억달러가 넘는 자산을 가진 미국 최대 에너지 생산·운송 업체 중 하나다. 미 경제방송 CNBC는 이번 거래를 도미니언에너지가 청정에너지 생산에 집중하는 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도미니언에너지의 토머스 패럴 최고경영자(CEO)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 및 메탄 배출량 제로(zero) 회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투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제회복에 비관적이었던 버핏 회장의 첫 대규모 투자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버핏 회장은 3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지분의 84%를 매각하고 JP모건체이스 지분도 3% 줄인 바 있다. 앞서 4월에는 델타·아메리칸·사우스웨스트·유나이티드 등 미국 4대 항공사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계속되는 주식 매각에 버크셔해서웨이의 현금보유액은 1,370억달러로 불어났지만 버핏 회장은 아직 마땅한 인수 업체를 찾지 못했다며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일관해왔다.
오랜만의 대규모 투자 대상이 천연가스라는 점도 이목을 끈다. 버핏 회장이 미중 무역합의의 이행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무역합의 당시 중국은 올해 미국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250억달러, 2021년에는 그 이상 구매하기로 공언했다.
월가에서는 일차적으로 버핏 회장이 투자에 나선 것 자체를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식에 투자하는 체비엇밸류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대런 폴록은 “소극적으로 보였던 버핏 회장이 기꺼이 인수에 나서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며 “이번 인수 사업 부문이 연간 수억달러의 순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버크셔 입장문의 첫 번째 인용문장이 잠재적인 후계자인 그레고리 아벨이 아니라 버핏이었다”며 “이는 다음달에 90세가 되는 버핏 회장이 여전히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저평가 기업을 골라내 장기 보유하면서 고수익을 내는 그의 투자 원칙을 봤을 때 에너지 가격이 낮은 수준이 아니냐고 보고 있다. 스메드캐피털매니지먼트의 빌 스메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에너지 같은 상품들이 저평가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 대상과 규모가 버핏 회장과 버크셔해서웨이가 익숙한 분야라는 지적도 있다. 블룸버그는 “이번 거래는 그를 따르는 이들이 기다려온 ‘메가 딜(초대형 거래)’은 아닐 수도 있다”며 “2016년 이후 가장 큰 인수지만 버크셔해서웨이 기준으로는 작으며 경기침체 와중에서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낮은 거래”라고 분석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곽윤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