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그린벨트 해제’ 반대 등 도심 주택공급 방안이 맹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 외에 ‘1기 신도시 리뉴얼’이 힘을 받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4기 신도시도 기존 신도시 반발 등으로 녹록지 않은데다 그린벨트 해제도 반대에 부딪히면서 역세권 등 자투리땅 개발 외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답은 공급 확대인데 시장이 원하는 곳에서 물량이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1기 신도시의 공급 잠재력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1기 신도시의 입지적 조건과 인프라 등 현재 생활여건은 2기나 3기 신도시와 비교해 서울 거주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며 “용적률 완화를 통해 사업성을 보강해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신규 신도시보다 나은 입지로 공급 효과를 충분히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기 리뉴얼, 주거환경 개선과 공급 가능=1기 신도시는 최초 입주가 시작된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까지는 중산층 주거지로 각광받았지만 지난 2010년 이후 노후가 본격화하고 있다. 경기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1기 신도시 거주민들은 주차공간 확보(61%)나 세대 간 층간소음(51.3%) 등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주택 노후 문제는 거주 불편에 그치지 않고 인구 구성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국토지리학회가 발간한 1기 신도시 관련 연구에서는 “산본신도시와 중동신도시는 과반수의 지역이 쇠퇴지역으로 분석돼 심한 쇠퇴를 겪고 있다”며 “주택가격 변화율은 정체되고 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 기반이 약한 집단이 밀집한 지역이거나 지역 내의 경제활동 기반이 취약해지는 등 비교적 일관된 특성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는 결국 서울의 집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최준영 율촌 법무법인 전문위원은 “1기 신도시를 노후되도록 방치할 경우 현재 거주하고 있는 중산층들이 서울 등으로 다시 이주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여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과 학계에서 1기 신도시 ‘리뉴얼’이 주거환경 개선과 서울 수요 분산, 추가 공급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제언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개별 단지 현황과 달리 1기 신도시 자체의 생활 인프라 경쟁력은 높다. 도로와 버스·지하철 등의 교통은 물론 의료·상가·학교 등의 시설이 30년에 걸쳐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와 만난 한 도시개발기업 대표는 “전면적인 재건축을 통해 1기 신도시의 가구 수를 늘리더라도 애초 계획 대비 인구수가 감소했기 때문에 교통과 도로 등 기존 인프라에 주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2·3기 신도시와의 입지 우위 등을 고려할 때 1기 신도시 개발사업은 주택 정책적 의미가 크다”고 했다.
◇용적률 높이면 ‘15만가구’ 추가 건립 가능=1기 신도시의 리뉴얼을 가로막는 장벽은 사업성이다.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은 150~200%로 비교적 낮지만 평촌과 산본·중동·일산의 경우 현재 집값이 정체돼 있어 분양가를 높이기 어려운 만큼 사업성 확보가 쉽지 않다. 분당의 경우 사업성을 갖췄지만 용적률 문제로 충분한 일반물량 분양분을 확보하기 어렵다. 시장에서는 용적률 200% 단지를 재건축 사업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며 통상 180%가 넘을 경우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에 대해 용적률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적어도 국가에서 지정해 탄생한 신도시라면 성장과 노후 등 생애관리를 정부 주도로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세부적 방안으로는 현재 유명무실한 용적률 거래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낮추자는 주장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어떤 방식이든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이 만약 400% 수준까지 완화할 경우 현재보다 절반가량 더 많은 공급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현재 1기 신도시 가구 수(약 29만2,000가구)를 고려하면 약 15만가구를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3기 신도시 17만3,000가구에 맞먹는 물량이다. 특히 1기 신도시는 1990년대의 가구 구성을 고려해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대형 가구의 비중이 27.9%에 달하는 만큼 소형 가구 비중을 확대할 경우 더 많은 가구를 공급하는 것도 이론상 가능하다. 윤 교수는 “판교나 분당과 같은 고용중심지가 되는 것이 가장 좋으며 교육여건 등에 대한 검토가 공급대책에 함께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