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에 반발해 중국과 홍콩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고 있는 미국에서 홍콩달러 페그제의 약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페그제의 무력화는 국제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위상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핵옵션’으로 불린다.
8일 블룸버그통신은 미 행정부 내부 인사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고위보좌진 일부가 홍콩보안법에 대한 반격 수단으로 홍콩달러의 미 달러 페그제를 약화시킬 것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약화 수단으로는 홍콩은행들의 달러 매입에 한도를 두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지난 1983년부터 홍콩은 홍콩달러를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와 연동하는 폐그제를 시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달러당 7.8홍콩달러로 고정시켰지만 이후 7.75~7.85홍콩달러 구간에서 연동시키고 있다. 이는 미국이 미 달러의 자유로운 환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2년 홍콩정책법을 통해 이를 명문화했다. 페그제를 통해 해외 기업들은 언제든 환 손실 없이 홍콩달러와 달러를 환전해왔다. 홍콩달러 페그제는 해외 기업과 투자자들이 홍콩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강력한 배경이기도 하다.
페그제 약화 구상은 최근 HSBC가 지난달 홍콩보안법에 대해 공개지지 성명을 내놓으면서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HSBC를 향해 “중국 정부에 머리를 조아려봤자 별 이득이 없을 것”이라고 날 선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홍콩 정부는 페그제가 미국의 허가를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며, 독자적으로도 페그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최근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4,400억달러로 페그제를 방어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의 달러 공급이 제한되거나 아예 중단될 경우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다만 이런 조치가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페그제가 사라지면 정작 중국보다는 홍콩 은행과 미국 기업들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는 것이다.
홍콩 금융시장에서도 페그제 붕괴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최근 글로벌 시장 일각에서 홍콩달러 페그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홍콩달러는 달러당 7.75~7.76홍콩달러에서 오르내리며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보안법 통과로 홍콩 시장에서의 급격한 달러 유출 우려가 컸지만 홍콩달러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아직은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