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두고 시민 단체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애도와는 별개로 성추행 고소 사건에 대해서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는 입장도 나오고 있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이대로 사건이 묻혀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목소리다.
10일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대표는 “박 시장의 사망과 성추행 의혹 사이에 관계가 있다면 (생전에) 피해자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있었어야 한다고 본다”며 “이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에서 보이듯 사회 변화에 앞장서 온 사람들 안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우리 사회가 그것을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박 시장은 살아있을 때 여성계의 움직임을 응원하고 지지했던 사람”이라며 “그런 행동이 본인의 과오를 감추기 위함이라는 식의 판단을 하진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박 시장은 ‘서울대 우 조교 사건’ 등 역사적인 성희롱 관련 소송을 진행한 변호사”라며 “충격적이고 안타깝지만, 성추행 의혹이 사실이라면 죽음으로 덮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 이사는 “피해자에게 ‘(경찰에) 고소해서 죽은 것 아니냐’는 식의 공격이 시작될 수 있다”며 “피고소인이 사망했어도 어느 정도의 조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10년째 정치인의 삶을 살았지만 그의 뿌리는 시민단체에 있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 시민사회단체를 거치며 한국 사회의 시민운동이 자리잡는 데 기여한 상징적 인물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여러 성폭력 사건을 맡아 피해자를 변호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죽음과 이어진 성추행 의혹을 두고 시민단체가 말을 아끼고 있다.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정확한 사실관계는 밝혀져야겠지만 성추행 관련 고소 사건 이후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며 “그런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높은 양심과 도덕을 기대받는 박 시장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창립멤버 중 한 명이었던 박 시장은 생전 참여연대에서 사무처장, 상임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박 시장이 상임이사로 활동했던 아름다운재단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재단 측은 “박 전 총괄상임이사는 2000년 8월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고, ‘1% 나눔운동’ 등 한국 사회 전반에 나눔문화 확산의 계기를 만들었다”며 “고인이 남긴 ‘나눔의 유산’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박 시장이 창립한 비영리 민간연구소 희망제작소는 이날 오후로 예정돼 있던 행사 일정을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취소한다고 밝힌 상태다. 김제선 희망제작소 소장은 “황망한 일”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