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천재의 영감과 특허성

박성준 특허심판원장

박성준 특허심판원장박성준 특허심판원장



영화 ‘플래쉬 오브 지니어스(Flash of Genius)’는 포드 자동차를 상대로 오랜 특허소송 끝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받아낸 로버트 윌리엄 컨스 교수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컨스 교수는 비 오는 정도에 따라 속도 조절이 가능한 자동차 와이퍼를 개발하고 포드사에 시제품을 보여준다. 포드사는 구체적인 자료를 받아낸 후 협상을 중단해 버린다. 포드사가 동일한 와이퍼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본 컨스는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지만 포드 측은 오히려 컨스 교수의 발명은 트랜지스터·저항·콘덴서 등 이미 알려진 구성요소의 단순 결합이므로 진보성이 없어 무효라고 주장한다.

특허의 진보성 판단은 영원한 숙제이다. 특허는 기존 기술이나 물건의 조합에 의해 용이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진보성이 없다는 이유로 등록이 불가하다. 발명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땜질식 변화를 준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천재적 영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진보성에 관한 명변론을 한다. 주인공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한 구절을 읽어준다. 이 소설의 창작성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지만 구성하는 모든 단어는 이미 알려진 것들임을 상기시킨다. 발명도 알려진 구성요소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쉽게 진보성을 부정하려는 당시의 특허 실무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미국에서는 이 영화 속 시기에 특허정책의 대전환이 이뤄진다. 이전 미국연방대법원은 높은 진보성 기준을 제시하고 반(反) 특허적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1982년 특허고등법원 격인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을 설립하고 진보성 기준을 완화해 특허 무효를 어렵게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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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도 이러한 특허정책 전환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1992년 이전 국내 특허출원의 70%는 외국인 출원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내국인이 75% 이상을 차지할 만큼 국내 기술의 수준과 특허환경은 급변했다. 다행히 지난해 특허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고 아이디어 기술탈취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되고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우리나라 특허 무효율은 40~50% 정도로 미국 25%, 일본 21%에 비해 높은 편이다. 특허가 믿을 만한 것이어야 이를 보고 투자하고 거래하며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적 혁신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다.

믿을 수 있는 특허를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긴 호흡으로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혁신생태계를 위한 첫발로서 특허심판원의 심판장을 11명에서 35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심판장의 확대로 증거조사의 강화, 구술심리 확대 등 실질적 3인 합의체에 의한 특허심판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특허의 진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의 출발점이 되고 나아가 특허의 신뢰성을 높여 혁신생태계가 선순환하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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