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뱅크시




2010년 10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한국에서는 한 대학강사가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새로 그려 넣어 논란이 빚어졌다. 이듬해 그가 공용물건 손상 등의 혐의로 기소되자 영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는 ‘한국 쥐에게 자유를’이라는 이름의 구명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의 주체는 영국의 그라피티(벽화) 작가인 뱅크시(Banksy)의 팬 사이트였다. 뱅크시는 자기 작품에 쥐를 자주 그려넣었고 대학강사는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쥐를 그린 것으로 전해졌다.


뱅크시는 1970년대생 영국인으로 추정될 뿐 신원에 관해 확인된 것은 거의 없다. 뱅크시라는 이름이 본명인지조차 모른다. 그는 모두 잠든 한밤중에 주로 벽에 세상을 풍자하는 그림을 재빨리 그려놓고 사라진다. 스텐실 기법(글자나 그림 등의 모양을 오려낸 뒤 그 부분에 물감을 발라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사용해 고작 낙서에 불과할 수 있는 그림을 예술 수준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그림은 시위하는 청년이 화염병 대신 꽃을 던지는 모습을 그리는 식으로 통념을 깨는 경우가 많았다. 2018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는 그가 그린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가 104만파운드(약 15억원)에 낙찰된 순간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여러 갈래로 찢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범인은 자신의 작품이 경매에 올려질 것을 알고 파쇄장치를 미리 설치해둔 뱅크시였다. 이 작품은 ‘쓰레기통 속의 사랑(Love is in the Bin)’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낙찰자는 이 작품을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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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뱅크시는 극장 비상문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그림을 그렸다. 2018년 도난당했던 그 비상문이 최근 이탈리아에서 발견돼 프랑스 대사관이 이를 공개했다. 뱅크시는 평소 낙서는 지워지는 것이 숙명이라며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똥 같은 것(shit)’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프랑스는 아마도 그의 그림을 도둑맞지 않고 영구히 보관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려면 그림을 직접 그린 뱅크시를 가장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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