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두고 결국 ‘계속 보존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면서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한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문제에만 집중하던 정 총리가 문 대통령의 신임 아래 어느덧 부동산 문제 등 각종 현안에 구원투수로 나선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정 총리와 주택공급 물량 확대 방안에 대해 협의한 뒤 “그린벨트를 미래세대를 위해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하자”고 결정했다. 당초 청와대와 당정이 주택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유력하게 검토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정 총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정 총리는 전날 그린벨트 해제 방안에 대해 “그린벨트는 한 번 훼손하면 복원이 안 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옳다”며 당정의 움직임에 반대 의견을 확실히 했다.
정 총리가 청와대 주도 이슈에 소방수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 총리는 애초 코로나19 방역에 집중하며 청와대와 역할을 나눠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각종 현안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빈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지난달 4월23일에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한 당·정·청 방침에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불만을 표시하자 “큰 틀에서 정부의 입장이 정리됐음에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발언이 보도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향해 경고장을 날렸다.
부동산 이슈와 관련해서도 지난달 30일 국회에 출석해 “정부의 노력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부동산대책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주장과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에도 정 총리의 입장을 지지해 김 장관을 이틀 뒤 긴급 호출했다.
고위공직자 다주택 처분 문제가 고개를 든 지난 5일에는 서울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 싱가포르의 예를 들며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취득세·보유세 인상과 종부세 전면 개편 방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8일에는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은 솔선수범해 하루빨리 집을 매각하라”며 선제적인 지시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