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삼성의 시간, 검찰의 시간

산업부장 김현수

미래위한 아이템 찾기에 여념없는

삼성은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는데

檢, 수심위 권고에 차일피일 눈치만

자체 개혁방안 걷어차는 일 없기를

김현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1일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만난다. 지난 5월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만난 후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얼굴을 맞대고 미래 사업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첫 회동에서 이 부회장은 정 수석부회장에게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보여주며 미래 전기차 및 배터리 사업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동에서는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의 미래를 보여주며 좀 더 구체적인 협력 아이템이 오갈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의 남양연구소 방문은 단순한 답방으로 보이지 않는다. 확산하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이 부회장은 답방이라는 한가한 이벤트를 만들 여유가 없다. 미래를 위한 아이템을 만들고 현실화시켜야 한다.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다.

시간은 물리적이지도 직선적이지도 동일하지도 않다. 시간이 무섭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한없이 느리게 흐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이 부회장과 삼성, 그리고 현대차에 시간은 전광석화와 같을 것이다. ‘졸면 죽는다’라는 말이 현재 우리 주력산업과 기업의 현주소임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삼성의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르고 있지만 삼성의 발목을 잡은 검찰의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흐르고 있다. 지난달 26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검찰은 심의위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 2018년 검찰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검찰개혁 방안 가운데 하나인 심의위의 결정이고 앞서 8차례의 권고를 모두 수용하며 제도의 신뢰성을 스스로 담보했지만 이 부회장 사건에 대해서는 머뭇거리고 있다. 아니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입김에 심의위의 결론이 흔들리기까지 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사법부로 끌고 들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사법적인 판단의 문제를 정치로 끌어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검찰이 모를 리는 없는데도 말이다. 검찰은 심의위원 13명 중 10명이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의견을 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의위가 여론에 휘둘렸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수사 내용이 부실하지 않았나 곱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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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본질은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미 2017년 이 사안을 두고 구속기소되기도 했고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결국 검찰은 같은 사건을 두고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한 뒤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및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나눠 4년 가까이 수사를 끌어왔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난다.

법원이 이미 파기한 ‘엘리엇의 주장’을 검찰이 들고나온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2015년 5월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당한 합병’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해 7월 법원은 “엘리엇의 제출 자료가 근거 없는 의혹이고 합병이 총수 일가에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검찰은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1년8개월에 걸친 50차례의 압수수색, 110여명에 대한 430여차례의 소환조사, 40만쪽에 대한 수사기록으로 기소를 못 한다면 대한민국 검찰이 아니다”라는 자존심을 접어야 한다. 이대로 기소를 한다면 또다시 삼성의 시간은 검찰의 시간과 맞춰져야 한다. 재판 준비만 6개월 이상 걸리고 대법원 최종판결까지 짧아도 5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 부회장은 물론 삼성바이오와 삼성물산 최고경영자(CEO) 등 20여명이 또 5년을 사법리스크에 묶여야 한다.

검찰의 시간을 무시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개혁 방안을 걷어차 버린다면 자존심을 지키기보다는 아집에 빠질 뿐이다.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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