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부동산을 분리해야 한다는 이른바 ‘금부분리’ 주장을 이어온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부동산시장의 금융자본에 대해 직접 칼을 빼 들었다. 부동산 전문 사모펀드를 금융투기자본으로 규정하고 불법행위를 단속·수사할 것을 검찰에 지시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추 장관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권한을 넘어서는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추 장관이 처음 금부분리를 주장할 때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논란에 한 마디 보태는 정도라는 인식이 많았으나 직접 수사 지시를 내림으로써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실제로 부동산시장 개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차명거래와 조세포탈 행위 등 부동산시장을 교란시키는 범법행위에 대한 단속은 통상 업무에 속하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개인 철학인 금부분리를 밀어붙이는 시도라는 비판도 적지 않아 향후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부동산 불법투기 사범에 대한 엄정대응을 전날 검찰에 지시했다고 22일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부동산시장의 불법행위를 찾아 단속, 수사 및 범죄수익 환수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수사 지시로 금융과 부동산을 분리해야 한다는 추 장관의 의중은 분명해졌다는 분석이다. 추 장관은 지난 18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서울 집값 상승의) 근본원인은 금융과 부동산이 한몸인 것에 있다”며 “한국 경제는 금융이 부동산을 지배하는 경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부터라도 금융의 부동산 지배를 막아야 한다”며 금부분리정책을 제안했다.
추 장관은 금융자본이 부동산시장에서 활동하는 것을 옥죄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1순위 타깃은 ‘부동산 전문 사모펀드’다. 실제로 전날 검찰에 불법행위 단속 대상으로 기획부동산과 부동산 전문 사모펀드 등 금융투기자본을 가장 먼저 제시했다. 사모펀드를 기획부동산과 동일 항목에 묶은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기획부동산은 기본적으로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업태를 일컫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추 장관의 이번 지시는 앞서 부동산펀드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동짜리 아파트 ‘삼성월드타워’를 사들인 것이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거래가 알려진 다음날인 20일 추 장관은 SNS에 “강남 한복판에서 금융과 부동산의 로맨스가 일어나고야 말았다”며 “금융과 부동산 분리를 지금 한다 해도 한발 늦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날 이지스가 새마을금고에서 받은 대출이 정부의 부동산 대출규제를 100억원가량 초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추 장관의 지시에 힘이 실리게 됐다. 이지스 측은 추 장관의 지시와 대출규제 초과 등에 대해 “해당 사안에 대해 확인 중”이라고만 답했다.
이처럼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부동산시장 개입에 나선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추 장관 본인은 “부동산이 투전판처럼 돌아가는 경제를 보고 침묵한다면 도리어 직무유기”라고 했지만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장관 개인의 철학에 근거해 부동산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월권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추 장관이 본연의 업무인 법무행정이 아닌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많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금부분리는 듣도 보도 못한 소리”라며 “부동산시장에 참여하는 금융자본을 투기세력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 테두리를 벗어난 부동산 투기세력은 당연히 근절돼야 하지만 추 장관의 인식은 법망 안에 있는 부동산펀드까지 몰아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