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정치적 회생’ 이후 국회를 처음으로 찾은 23일, 그를 만나려는 의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날 이 지사가 참석한 ‘소재·부품·장비 육성방안 경기도 정책토론회’에는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정성호·김병욱·김영진·이규민 의원과 당 대표에 출마한 박주민 의원은 물론, 재선인 권칠승·김한정·백혜련·임종성 의원 외 김남국·고영인 등 다수의 초선의원이 이 지사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 지사의 정치적 동지라 할 수 있는 정성호 국회 예결위원장은 “이 지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며 그의 정치적 생환에 찬사를 보냈다.
‘사이다 정치인’ 이재명이 뜨고 있다. 이 지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 정치적 주가를 한껏 끌어올리면서 1년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의 유력주자로 성큼 도약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부동의 1위인 이낙연 의원을 오차 범위 내로 바짝 따라붙었을 정도다.
이 지사는 내친김에 중도층을 파고들며 대선 판세를 아예 뒤집을 태세다. 최근 이 지사는 “부동산 규제는 가격보다 숫자를 줄여야 하고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게 실수요 여부다. 비싼 집에 사는 게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가격(집값)보다는 숫자(다주택), 숫자(다주택)보다는 실거주 여부를 따져 징벌적으로 중과세를 해야 한다”고 종부세 인상 논란에 현 정부의 방향과 ‘결’이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서민 정책을 표방하는 민주당이 고가주택 보유자들에 대해 종부세 강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1주택 고가주택 보유자에게 징벌적 과세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더 나아가 이 지사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 방안에 대해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그린벨트, 더군다나 강남의 핵심 요지에 아파트를 공급하면 사상 최대의 로또가 될 것”이라고 정부 여당 주도의 부동산 대책 논의에 대한 허점을 찔렀다. 그리고 이 지사의 발언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그린벨트 개발 불가 방침이 결정되면서 ‘이재명의 존재감’은 한층 높아졌다.
급기야 이 지사는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한다.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발언에 중도층은 환호했으나 정치적 역풍은 컸다. 곧바로 이해찬 당 대표와 이낙연 의원, 당의 친문 의원들의 “올해 말에 꺼낼 이야기를 왜 벌써부터 꺼내들었나”라는 경고가 빗발쳤고 이 지사는 “서울·부산시장 무공천을 주장한 바가 없다”고 입장을 뒤집었다. 단 하루 만의 입장 표변을 보고 “이재명이 꼬리를 내렸다”는 실망 섞인 대중의 비판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바로 이 지점이 바로 이 지사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이다. 당내 친문재인계의 지지기반이 약한 이 지사로서는 강한 대중적 인기를 발판으로 대권에 다가서겠다는 전략이 효과가 클 수 있지만 이번의 경우처럼 대중을 향한 ‘사이다 발언’이 자칫 당의 노선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 ‘대권 후보’ 이재명의 결정적 한계다.
이 지사는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기회 요인과 위협요인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우선 민주당 지도부는 물론 이낙연 의원이 내년 보궐 선거 공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명쾌하게 핵심을 찌르는 발언이 정치적 주가 상승의 핵심 자산으로 평가된다. 명료한 정책 해법 제시도 이 지사의 장점으로 꼽힌다. 또한 당내 경선을 통과할 경우 민주당 지지 세력에 영남층의 유권자까지 파고들 수 있는 점은 또 다른 기회 요인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대권 도전에 앞선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과연 1위에 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의 구도만 놓고 볼 때 민주당 지지층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호남에서 경북 안동 출생인 이 지사는 호남 출신에 전남지사를 지낸 이낙연 의원에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1,300만명의 유권자가 포진한 경기도에서 이 지사의 지지층이 두꺼운 만큼 호남에서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겠지만 친문과의 접점이 없는 이 지사로서는 당원들의 지지세를 등에 업기가 쉽지 않은 구도다.
대중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른바 흙수저 출신이라는 점이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가난해 소년공으로 지내다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대체하고 주경야독으로 대학에 진학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한 인권변호사라는 점이 대중의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무기로 꼽힌다. 이낙연 의원조차 “그 당시에 다 어렵게 살았다. 그것으로 논쟁한다는 게 국민들 눈에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흙수저 프레임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대선 후보 경선과 본선에서 흙수저 출신이라는 무기가 강한 휘발성을 보일 수 있음을 인지한 것에 대한 반응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지사는 지난 20일 발표된 2022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8.7%의 지지율로 이낙연 의원(23.3%)과의 격차를 오차 범위 내로 좁히는 데 성공했다. 6월 조사에서 드러난 15.2%의 지지율 격차를 한달여 만에 4.6%로 좁힌 이 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상용·박진용기자 kim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