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그가 더욱 그립다




맹준호 생활산업부 차장


그는 부산 초량동의 산동네에 살았지만 어려서 첼로를 배웠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던 아버지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어느 날 그를 전축 앞으로 불러 “너도 중학생이 됐으니 이런 걸 들어야 한다”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틀어줬다고 한다. 그는 그때를 얘기하며 “100번은 넘게 들었을 거야.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거였는데, 처음엔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가 나중엔 심취하게 되더라고”라고 말했다.

그는 재수를 해서 경기고에 들어가 사회 부조리에 눈을 떴다. 하루는 밤을 틈타 유신에 반대하는 내용의 ‘귀 있는자 들으라’라는 유인물을 전교생의 책상에 넣었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 당시 이 글을 직접 쓰고 같이 책상에 넣은 이는 이종걸 전 의원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이종걸은 훗날 그의 결혼식에서 행진곡을 쳤다.

그의 어머니는 월남하기 전 북한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다. 아들이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자 이 분야에 대한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며 공부했다. 스크랩철이 20권이 넘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1989년 구속수감돼 2년6개월간 옥살이를 할 때 총 171통의 손편지를 썼다. 생일 때는 도화지에 촛불이 가득 켜진 3단 케이크와 그가 특히 좋아하는 포도 두 송이를 그려 보냈다. 그림 아래는 ‘836번이 받을 수 있는 케이크’라고 적혀 있었다. 836번은 의의 수인번호다. 그는 어머니가 감옥에 보낸 편지를 모두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한 장도 다시 읽어볼 엄두룰 못 냈다고 한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입원한 어머니의 병실을 찾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사연은 그가 이금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공중파 방송 아침 프로에 출연하면서 알려졌는데, 훗날 이금희는 18대 총선 노원병에 출마한 그를 도왔다. 영화배우 박중훈은 그를 ‘참 좋은 형’이라고 말할 정도로 좋아했다. 박중훈이 노원역에서 그의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사진은 아직도 인터넷 여기저기에 떠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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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감옥에 가기 몇 개월 전인 1988년 12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자 두 살 연상인 김지선 인천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과 결혼한다. 김지선은 16살에 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알게 된 현장노동자 출신 투쟁가였다. 훗날 김지선은 “남편이 나보다 먼저 한 것은 국회의원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혼이었고 신혼 때 감옥을 간 탓인지 출소하고 나서도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았다. 온갖 노력을 했으나 포기하고 입양을 하려고 했지만 소득이 불안정하다는 것이 결격사유가 돼 이마저도 실패한다.

17대 총선에서 그는 진보정당 비례대표 8번으로 비당선권이었다. 집에서 자고 있는데 새벽 2시30분에 당직자가 “당선이 유력하다고 방송에 나온다”며 깨웠다. 그는 당직자에게 “AFKN에는 뭐라고 나와?”라고 물었다.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유머와 해학의 여유를 잊지 않는 신사였다.

그는 매일노동뉴스라는 신문을 10년 운영하다 빚을 많이 졌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국회의원 후보등록할 때 재산을 700만 원으로 적었다. 그간 생활은 어떻게 했냐는 질문에 “그래도 애가 없으니까 한 달 생활비는 60만 원이면 되더라”고 했다.

그가 탈당과 창당을 반복한 것은 자주파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교조주의를 멀리하고 항상 서민대중 옆에 서는 생활정치를 일관되게 원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 그 유명한 일명 ‘6411번 버스 연설’에 잘 담겨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9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 글을 쓴 23일은 고(故)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꼭 2년이 된 날이다. 노회찬의 삶을 다룬 글들과 팟캐스트 등을 찾아보다 정치활동이 아닌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내는 내용만을 추려 독자들과 공유한다. 이념과 진영을 떠나 이렇게 친근한 정치인이 또 있을까. 지금의 국회, 현재의 정의당을 보면 그의 존재가 한없이 아쉽다.

/next@sedaily.com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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