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부족해 가동중단 위기에 몰렸던 월성원자력발전소가 기사회생했습니다. 중단 여부를 좌우할 저장시설 증설을 두고 환경·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원전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았는데요. 정작 다수 지역 주민들은 증설 쪽에 손을 들어준 겁니다. 원전 가동중단 사태는 가까스로 면했지만 임계점에 이르러서야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행태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적잖습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지난 24일 경주 월성 지역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추가 건설 여부에 대한 찬반조사 결과 81.4%가 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대는 11%, 모르겠다는 7.6%로 집계됐습니다.
시민참여단은 월성 원전 5km 이내에 있는 3개 읍·면 주민과 인근 경주 시민으로 구성됐습니다. 사전에 9차례 설명회를 거친 후 지난달 무작위로 3,000명을 우선 추리고, 연령·성별 등을 고려해 최종 145명을 선정했습니다.
시민참여단의 찬성 의견이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늘어난 점이 눈길을 끕니다. 시민참여단은 3주간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숱한 토의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찬성률은 1차 조사에서 58.6%였으나 2차 80%, 3차 81.4%로 높아졌습니다. 1차 설문에서 ‘모르겠다’고 응답한 48명 가운데 35명이 3차 설문에서 ‘찬성’으로 바뀌었고요. 반대율은 8.3%에서 11%로 3%포인트가량 늘긴 했지만 찬성률 상승폭에 견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원전 발전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맥스터의 안전성에 대한 인식이 공유된 결과”라고 해석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결과 바탕으로 맥스터 증설 여부를 결정할 방침입니다. 산업부가 지역 주민의견을 반영해 결정을 내리겠다는 뜻을 밝혀온 만큼 증설이 무리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 결과를 존중한다”면서 “권고안을 토대로 정부 차원에서 그동안 증설에 반대했던 이해관계자들과 대화를 진행한 뒤 오는 8월 중 최종 증설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증설 결정 즉시 한국수력원자력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증설 관련 공작물 축조 신고를 하고 지자체에서 신고를 수리하면 맥스터 증설을 위한 행정절차는 마무리됩니다.
이날 발표에 따라 월성 2~4호기 가동중단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원전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발전에 사용했던 핵연료를 보관할 맥스터가 필요한데 올해 3월 기준 월성원전 맥스터 포화율은 95.36%에 달해 2022년 3월 즈음에는 완전히 포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수원은 약 19개월의 공사기간을 감안해 8월까지는 지역 의견수렴 등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맥스터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다만 한숨 돌린 월성원전과 달리 다른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한울원전은 2030년, 고리원전은 2031년, 한빛원전은 2029년에 각각 포화 상태에 이를 전망입니다. 포화 이후 넘쳐날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핵연료를 처분할 곳을 찾지 못해 가동 중지 상황까지 내몰렸던 월성 원전의 사례가 다시 반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전업계는 사용후핵연료를 최종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설 설립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6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마련해 2028년까지 원전 외부에 영구처분 부지를 선정, 2052년까지 영구처분시설 건설 등 장기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는 2017년 로드맵을 없던 것으로 하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해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과거 정부에서 의견 수렴 과정이 부족했다며 전면 백지화를 결정한 건데요.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났지만 여지껏 이렇다 할 방향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정부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안임에도 공론화를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김소영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장은 “궁극적으로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