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코로나19와 전체주의

김영필 뉴욕특파원




지난 3월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미국은 자유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검사와 추적이 어려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크게 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결과 ‘L자형’ 경기침체를 피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와의 대화를 기사로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자유와 코로나19, 경제는 무슨 관계일까.

4개월여가 지난 지금, 답은 명확해졌다. 손 교수의 말대로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400만명을 넘었고 사망자는 14만명을 돌파했다. 둘 다 세계 1위다. 2·4분기 소매판매 지표와 경기가 반짝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용지표는 여전히 바닥이고 코로나19 재확산에 더블딥(double dip·이중침체) 가능성까지 흘러나온다.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코로나19의 온상이 된 것은 후진적 의료 시스템과 인종·계층 간 불평등이 원인이다. 하지만 손 교수가 언급한 ‘자유’도 빼놓을 수 없다. 노 마스크(No mask) 행보를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마스크 착용을 권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꺼려 한다. 자신의 자유가 제약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미 경제방송 CNBC에 왜 주 정부가 영업을 막느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음식점 주인 인터뷰가 나온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정부가 질병을 막을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건강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인데 정부 역시 개인의 삶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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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확실히 실패했다. 미국인들의 자유에 대한 강한 인식과 요구는 분명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미국과 유럽 내에서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한국식 검사·추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걱정스러운 것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정부의 간섭과 권한 강화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큰 정부 덕에 코로나19를 상대적으로 잘 막아냈지만 QR코드까지 동원해 출입명부를 전산화하는 것을 보면 정보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코로나19 환자 정보와 관련해 당국이 수집해 공표할 수 있는 항목은 우리나라가 9개인 데 반해 뉴욕시는 3개에 불과했다. 물론 이것이 코로나19 대응의 성패를 갈랐을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 같은 피해를 감수하면서 개인과 자유에 방점을 두고 있다.

코로나19를 모두 이겨냈을 때 우리도 자유에 대한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미국적 사고가 옳다는 게 아니다. 단순히 마스크를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전체주의적 사고에 대한 얘기다. 국민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며 코로나19와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감내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우리나라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의 보안결함으로 해커들에게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있고 데이터까지 조작할 수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는 코로나19 방역과정에서 K바이오를 뽐냈지만 정작 코로나19 백신개발에 근접한 기업은 화이자와 모더나 같은 미국 회사들이다. 코로나19로 미국과 유럽이 우리에게서 배울 게 있듯 우리도 그들에게서 얻을 것이 있다. 이를 곰곰이 따져보는 게 진정한 ‘BC(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코로나 이후)’의 차이 아닐까. 나라와 대의를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짓밟는 성추행조차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난무하는 한국 사회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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