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존경받는 군인이기도 했다. 대치 중이던 영국군의 야전병원에 식수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장갑차에 백기를 달아 식수를 전달했고 영국군이 답례로 와인을 보냈다고 한다. 전투가 끝나면 부상자들을 돌봤고 병사들과 똑같은 전투 식량을 먹으며 야전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다. 하지만 1944년 ‘작전명 발키리’로 유명한 히틀러 암살 사건에 연루돼 게슈타포에 체포된 후 반강제적으로 청산가리 독약을 먹고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거행됐다. 로멜이 암살 공모에 가담했는지를 두고 의견은 분분하지만 “국가의 기본 토대는 정의이며 학살 행위는 크나큰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그의 선택을 미뤄 짐작하게 한다.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천 명의 지뢰 피해자를 낳은 로멜의 기념비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고심을 거듭한 하이덴하임시는 로멜의 기념비를 그대로 두되 그 앞에 목발을 짚고 있는 지뢰 피해자를 상징하는 조각상을 세웠다. 로멜의 공과를 상징하는 조각물이 함께 서 있게 된 것이다. 역사의 일부분이 부정되고 공격받는 요즘 같은 때 독일 소도시의 선택은 분열과 혐오의 틀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정민정 논설위원
*흔히 알고 있는 에르빈 롬멜의 국립국어원 공식 표기법은 ‘에르빈 로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입니다. 다수의 저서와 보도에서 롬멜로 표기됐지만, 서울경제신문은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에 따라 로멜을 사용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