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던 정부가 신도시에 이어 조만간 추가 공급 대책을 내놓는다.
△저도 이해할 수 없다.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주택 공급을 늘려달라’고 주문했는데도 김 장관은 14일 방송에 출연해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 서울 입주 물량은 3년간 과거 10년 평균에 비해 35% 정도 많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국민이 혼란스럽지 않겠나. 김 장관은 주택 공급 부족 우려를 ‘공포 마케팅’이라고 일축한 적도 있다. 3년 내내 이런 식이다 보니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린 사람만 바보가 됐다. 오죽하면 ‘패닉 바잉(공포에 의한 매수)’이라는 말이 나오겠나. 민심이 들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린벨트 문제는 논란 끝에 문 대통령이 풀지 않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는데.
△정책 결정 과정이 석연찮다. 일단 공급 대책을 국토교통부가 아닌 기획재정부에 맡긴 것부터 그렇다. 그린벨트 문제를 대통령이 정리할 사안인지도 의문이다. 이미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당정이 이미 의견을 정리했다’고 했다. 이게 김 실장의 개인적 의견이겠는가. 해제 쪽으로 기울었는데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하나같이 해제 신중론 내지 적극적 반대론을 개진했다. 이게 (대통령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레임덕(권력 누수)의 조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40%가 넘는데 레임덕 거론은 과도한 것 아닌가.
△보기 나름이다. 그린벨트 문제는 여권 내부에서 조용히 토론할 사안이었다. 한데 중구난방으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대선주자들이 정책 결정권자도 아닌데 왜 그린벨트 문제를 거론하겠나. 부동산 문제가 국민 최대 관심사로 부상하니 다들 자기 정치하는 것 아닌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까지도 한마디 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발언들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레임덕 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해제 불가로 정리했지만 이게 오히려 레임덕이 시작됐구나 하는 느낌을 줬다.
-태릉 골프장 일대 주택 개발이 유력시되는데.
△이곳 역시 그린벨트다. 녹지 훼손 차원을 떠나서 일단 입지적 특성을 간과하고 있다. 태릉 일대는 고질적인 교통체증 지역이다. 그 옆에 2기 다산 신도시가 있다. 3기 왕숙 신도시도 개발에 들어간다. 거의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있다. 서울은 동서 축의 교통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 태릉 일대가 개발되면 다산·왕숙 신도시는 피해를 입을 우려가 크다. 고양 창릉 3기 신도시 개발 발표가 일산·파주 주민들의 큰 반발을 부르지 않았나. 제2의 일산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공원과 녹지의 필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한쪽에서는 돈 들여 녹지를 조성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녹지를 풀어 주택을 짓는 것은 모순이다.
-수요를 충족시킬 정도로 의미 있는 공급 대책이 나올까.
△서울은 만성적인 택지 부족에 처해 있다. 대규모 공급이 가능한 방안은 재건축·재개발밖에 없다. 차 떼고 포 떼다 보니 그린벨트 풀자는 무리수가 나오는 것이다. 주택 공급은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다. 수요자가 원하는 곳에 공급돼야 한다.
-재건축은 공급 확대 방안으로 의미가 있지만 투기 수요를 부추길 우려가 있는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개발이익을 환수할 장치가 얼마든지 있다.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 보유세 강화 등 촘촘한 규제가 작동한다. 재건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재건축 빼고 무리수를 찾는 게 좋은지 답은 명확하다. 그런데도 안전진단부터 규제로 붙잡고 있다. 공공성을 가미한 재건축·재개발 방식도 있다. 공급을 확대할 다양한 출구를 열어두는 게 합리적이다.
-공급 확대를 주장하지만 김 비대위원은 4·15 총선 때 3기 신도시를 반대하지 않았나.
△기본적으로 서울 유입 수요를 외곽으로 분산해야 한다. 하지만 추가 신도시 건설은 해답이 못 된다. 1·2기 신도시에 기업을 유치하고 광역교통망을 확충하는 것이 정답이다. 30년쯤 된 1기 신도시는 전체적인 도시계획을 다시 짤 때가 됐다. 일산만 하더라도 기업을 유치할 만한 땅이 있다. 그런데도 3기 신도시 창릉에 기업을 유치한다고 한다. 신도시 간 분열 내지 제로섬 게임을 유발해서는 곤란하다.
-거시경제 상황은 냉골인데 왜 이렇게 집값이 오르나.
△과도한 유동성이 첫 번째 원인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현 정부에서 22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집값이 떨어지기는커녕 계속 올랐다. 이건 정부와 정책의 무능 때문이다. 기존 정책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뭐가 문제인지, 기존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해봐야 하는데 규제의 강도만 높였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풍선효과로 튀어 오르는데도 계속 뒷북 대책으로 두더지 잡기 게임만 벌였다. 그 사이 시장은 내성이 생기고 돌이킬 수 없는 정책 불신을 낳았다.
-정책 실패 탓이 크다는 말인데.
△그렇다. 시장에서는 규제를 가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가히 집값 펌핑의 선수들이다. 정부가 스스로 만든 정책의 효과에 대해 자신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기다리지 못하고 계속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공급 대책은 이미 타이밍이 늦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지금은 불을 끌 때’라며 공급 확대에 반대했는데.
△그때의 모닥불이 지금은 산불로 활활 번지지 않았나. 공급 대책은 현 정부 출범 직후 수요억제책과 병행해야 했다.
-수많은 정책 가운데 큰 패착을 하나 꼽는다면.
△임대사업자 등록 제도의 실패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다주택자에게 중과세하는 ‘8·2 대책’을 내놓았다. 당시 2채 이상 집을 보유하면 집을 팔든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라고 했다. 그해 12월 임대사업 활성화 대책에서 양도세 합산 배제 등 각종 세금 감면 조치를 취했다. 이에 투기꾼들이 죄다 임대사업에 뛰어들었다. 개인에 대해서는 온갖 대출 규제를 가했지만 임대사업자 대출 억제 대책은 한참 뒤에 나왔다. 전형적인 뒷북정책이다. 이 과정에서 애먼 실수요자만 피해를 입었다. 전세 끼고 집 사는 것은 일반적인 내 집 마련 방식인데도 ‘갭투자’를 차단한다며 대출 길을 막아버렸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 투자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극명한 자산 격차가 발생했다. 이러니 ‘패닉 바잉’이 생기는 것이다. 다주택자 중과세와 임대사업 활성화는 잘못된 정책조합이고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정부는 ‘7·10’ 대책에서 양도세· 보유세· 취득세를 모두 올렸는데.
△세금은 벌금이 아니다. 세금을 올리려면 명분과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보유세 인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렸다. 세율을 인상하기 전부터 공시지가와 공정가격비율을 높이면서 보유세 부담을 크게 늘려왔다. 보유세를 올렸다고 해서 거래세를 낮춰준 것도 아니다. 정부가 온갖 세제 특혜를 줘가며 권장했던 주택임대사업자는 하루아침에 투기꾼 신세로 전락했다. 팔면 양도소득세, 보유하면 보유세 폭탄을 맞는다. 조세 저항은 필연적이다. 다주택자를 겨냥한 분노 유발 정치가 카타르시스를 줄지 모르겠으나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공급은 신축 주택만이 아니다. 기존 주택 매물 내놓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가지 않는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집값 상승률을 두고 정부와 시민단체가 갈등을 빚었다. 상승률이 14%(국토부)인가, 52%(시민단체)인가.
△두 통계는 용도가 다르다. 국토부의 14%(아파트 기준) 지수상승률은 다른 물가와 비교하기 좋은 반면 52%라는 중위가격 상승률은 체감도가 높다. 어느 하나만 고집할 것이 아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장과 괴리된 통계는 정부 불신만 키운다. 숫자는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국민 체감도를 가지고 얘기하자’고 했다. 어느 통계를 정책에 반영해야 할지 명확하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 싫으니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김 장관 문책론이 제기되지만 정세균 총리는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고 했는데.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집값을 이토록 올려놓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느 국민이 정책을 신뢰하겠는가. 정부와 정책 불신이 쌓이면 백약이 무효다. 장수를 교체해 승리할 수 있다면 바꿔야 하지 않나.
-장수를 바꾼다고 승리할 수 있겠나.
△장수의 말을 누가 믿기나 하나. 지금은 집값도, 정책도, 당국자·정치인의 말도 버블(거품)이다. 진정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메신저를 바꾸면 메시지가 달라지고 ‘말발’이 선다. 그래야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정책 리셋은 그 다음이다.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정신여고와 경원대(현 가천대) 도시계획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도시계획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을 거쳐 1995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창립 멤버로 합류해 20여년간 도시계획·부동산 분야를 연구했다.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거쳐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21대 총선에서 낙선 후 일산 신도시에서 도시재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