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정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각자가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함(君君 臣臣 父父 子子)을 강조했고 이끌고 노력하는 것(先之努之)이라고 답했다. 국민의 한쪽 편만 보고 다른 편을 몰아붙이는 작금의 우리 정치가 돌아봐야 하는 귀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정치판의 편향성이 법조계로 번지고 경제 전반에 부정적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기에 새삼 소중하게 떠오른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적 영향에 흔들리는 듯한 판결이나 공명심에 물든 과도한 직진형 수사나 기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를 불식하고 공정한 수사와 기소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담보하는 장치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설치됐다.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 수사심의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 사안을 다루면서 주목을 받았고 현직 검사장이 자신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심의를 요청하면서 화제성이 커졌다. 검찰의 고위직 인사조차 검찰의 행태에 의문을 표했는데 일반인에 대한 검찰 수사나 기소라면 어떠했을까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는 수사심의위가 억울한 일반인 피의자가 기댈 수 있는 객관적 보루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 영역에서 수사심의위 결정에 말을 보태면서 그 객관성마저 갈등 속에 밀어 넣고 있다. 수사심의위의 상당수 위원은 이 부회장이나 채널A 검사장 사안과 관련해 기소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판단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특정위원의 편향된 입장에 다른 위원들이 영향을 받았다거나 위원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와 정파적 이해관계가 깔린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소수 위원에 의해 훨씬 많은 위원이 영향을 받아 왜곡된 결정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지적은 객관적·합리적일 수 없다. 특히 위원 각자가 각계 전문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남의 말에 일방적으로 오도될 유약한 인사들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추론이다. 현 정부에서 설치된 위원회이기에 정부 친화적 인사가 다수를 점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상식적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결과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과정을 부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더욱이 수사심의위 결정이 거부돼야 한다는 주장은 위원회를 검찰개혁의 결과로 적극 옹호하던 앞선 주장과는 완전히 모순된다.
삼성과 채널A 사안에서 위원회의 결정은 직진형 수사가 무리한 기소로 이어진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유의돼야 한다. 이견과 논란이 많은 사안이라면 더욱더 집단적 이성의 합리적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시대의 객관적 정의에 부합하는 것임은 부언의 여지가 없다. 영미법을 ‘보통법’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고 판단하는 법적 인식을 기준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그간 적지 않은 사례에서 국민의 법감정을 거론했던 태도가 상기되는 지점이다.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와 관련해 적지 않은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일반의 법적 인식은 수사심의위의 판단과 동일하게 검찰이 과하다는 것이었다.
정치가 갈등과 대립을 확산시키는 감염매개체가 돼서는 안 된다. 정치는 갈등을 막고 대립을 해소하는 화합과 통합의 백신이나 치료제일 때 존재가치가 있다. 국가의 지도적 자산인 정치와 법조계가 본연의 일에 충실하고 국민의 힘을 온전히 모아 국가를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외래적 위협과 경쟁국의 극한적 경제 공세로 우리의 경쟁력과 생존을 돌아봐야 할 시기임을 고려한다면, 정치와 법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많은 국민의 소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