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사실은폐로 트럼프가 얻는 이익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검사할수록 확진자만 늘어난다"

진단 지원 거부 등 정보 통제속

수백만 실직자 실업수당 중단

'경제 재난' 피하기 쉽지않을듯

폴 크루그먼폴 크루그먼



우리는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의 우군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한 정보를 통제하는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들은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을 잡지 못한 채 실제 상황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들의 최고 관심사인 정치적 측면에서 봐도 거짓 정보를 퍼뜨리려는 그들의 노력은 실효를 거두기 힘들고 시기적으로도 너무 늦었다.

우선 우리가 처한 현주소부터 점검해보자. 앞으로 며칠 후면 수백만명의 실직 근로자들에게 한시적으로 지급해온 추가 실업수당이 중단된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의 실수입이 격감한다는 얘기다. 의회가 추가 실업수당 지급시한 연장을 위해 나서야 할 급박한 상황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실직자들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경제 재난’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신속한 조치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또 있다. 코로나19 진단검사 확대와 역학조사에 필요한 예산 배정을 두고 공화당 내부에서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미국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진단검사와 역학조사 확대는 필수적이다. 확진 건수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검사 적체 현상이 빚어졌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진단검사는 사실상 유효성을 상실한 상태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진단검사 자금 지원에 반대한다. 뚜렷한 반대 이유도 없다. 한 달 전 트럼프가 털사 유세를 통해 직접 이유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검사를 하면 할수록 확진 건수가 늘어난다”며 “담당자들에게 제발 검사를 늦추라고 지시했다”고 털어놓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실상을 몰라야 트럼프가 다치지 않는다.

트럼프 진영이 나쁜 소식을 막으려 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음모론에 근거해 이들이 시도한 ‘공작’을 감안하면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시 공화당이 퍼뜨린 음모론은 그들 스스로 하고 싶었던 일 혹은 집권에 성공하는 즉시 시행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오바마 행정부가 치안확보를 이유로 군을 동원해 텍사스를 장악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에 공화당 중견 인사들이 대거 가세했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지금 우리는 공식표시가 없는 차량에 탑승한 정체불명의 국토안보부 요원들이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자들을 붙잡아 강제로 끌고 가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비밀리에 집단수용소를 짓고 있다는 또 다른 음모론을 기억하는가. 바로 지금, 미국 국경을 넘은 수천명의 중남미 난민들이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채 강제수용소에 억류돼 있다.

관련기사



이렇게 보면 오바마를 모함했던 트럼프주의자들이 코로나19 확진 건수를 숨기려 드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진단검사를 늦추려는 노력은 그들이 저지르는 기만과 허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 코로나19와 관련한 모든 병원자료를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아닌 민간계약업체에 보내라고 지시했다. 코로나19 핵심 지표 중 하나인 환자 입원 자료들이 CDC 웹사이트에서 사라지면서 여론이 들끓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의아스러운 점은 진단검사에 대한 공세가 이토록 늦게 나온 이유다. 전염병과 관련한 나쁜 소식을 감추고 싶었다면 통제 불능 상태라는 사실이 일반 상식으로 자리 잡기 이전에 서둘러 은폐를 시도해야 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미국인 수가 캐나다의 8배, 유럽의 10배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에 진지하게 대처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고위 관리들은 이미 지난 4월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부실대응에 따른 처벌을 전혀 받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행정부 관리들 역시 코로나19가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사실을 은폐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진단검사를 방해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선거 이전에 경제를 되살리려는 시도는 이미 실패로 돌아갔고 경제활동을 재개한 주들도 다퉈 봉쇄해제 조치를 거둬들이는 중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처에 관한 한 대중의 신뢰를 거의 완전히 상실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진단검사 축소는 정치적 전략이라기보다 보스의 허약한 자존심을 보듬어주려는 측근들의 시도처럼 보인다. 트럼프는 확진 건수가 급증하는 유일한 이유가 진단검사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허위주장을 되풀이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보좌관들은 검사를 늦추는 방법으로 그의 심기를 다독이려 든다.

만약 이로 인해 코로나19 대응에 차질을 빚으면 진단검사-역학조사-격리로 이어지는 전략은 불가능해진다. 물론 바이러스에 대한 실질적 대응은 애초부터 그들이 갖고 있던 계획의 일부가 아니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