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귀금속 거리의 한국금거래소 본점. 번쩍번쩍 노랗게 빛나는 금(金)이 진열된 쇼윈도 너머의 직원들은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직원들은 이를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저희가 취급하는 골드바는 여러 종류입니다. 부가세 10%는 별도로 하셔야 하구요. 매입하시려면 직접 방문하셔야 합니다 .”
예년보다 많은 비를 뿌린 장마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찾은 사람도 적지 않다. 상당수는 노년층이다. 노인들은 어깨 위로 짊어진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거나 주워담으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골드바를 사가신 손님입니다.” 추후 직원이 말해줬다. 그렇다고 노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금을 팔려고 하는데 얼마 정도 받을 수 있나요.” 넥타이를 매고 있는 한 젊은 남성이 직원에게 묻고 있었다.
이날의 모습은 안내 전광판이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듯했다. ‘순금 한 돈 매입가 기준 30만2,000원.’ 1주일 전 대비 약 3% 넘게 오른 가격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금값 지표인 뉴욕상품거래소 금 선물 가격은 이 기간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갔고 9년 만에 1,900달러 선을 넘어섰다. 이른바 금값이 무섭게 치고 오르는 ‘금의 시대’를 맞아 개미들의 본격적인 ‘골드러시’가 이어지는 것이다.
일반인들까지 금 투자에 관심이 커지자 이 업체의 거래량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금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거래량은 예년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면서 “매수와 매도 모두 급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금에 대한 높은 관심은 세태도 바꾸는 양상이다. 아기 돌 반지 수요를 골드바가 대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금반지는 추후 세공비 등의 문제가 있어 되팔 때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게 주된 이유다. 대신 재판매가 쉬운 골드바를 아이들에게 첫돌을 기념해 선물로 주고 있다. 즉 ‘금테크’라고 통칭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금 현물 투자자의 시선으로 ‘골드바’에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금을 단순히 치장용 귀금속으로 보지 않고 투자 개념으로 보는 현상과 맞물리면서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종로의 금은방 전체가 이번 현상의 수혜를 받지 못한다는 일각의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종로의 한 귀금속 가게 사장은 “최근 현상은 정확히 골드바에 대한 선호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반지나 목걸이 등 일반 상품을 취급하는 금은방은 금값이 오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금값의 고공행진은 은(銀) 가격까지 끌어올렸고 이에 ‘실버바’를 매입하려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 한국금거래소 관계자는 “저기 빈 상자가 보이나. 20㎏짜리 실버바 10개가 든 한 박스를 방금 한 번에 사갔는데 대략 2,000만원 정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금의 시대’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세대별로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한다. 종로 등 현장에서 금을 주도적으로 사들이는 계층은 노년층이 대다수인 반면 젊은 세대들은 돌 반지 등 갖고 있던 금을 팔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특히 노년층은 기존에 가진 여유 자금을 들고 오거나 부동산을 정리하고 남은 돈 일부를 갖고 온다. 심지어 쌈짓돈까지 꺼내 가며 금을 사러 오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개미들의 골드러시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가 금값의 추가 상승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12개월 금 선물 전망치를 온스당 2,300달러로 제시해 종전 전망치인 2,000달러에서 상향 조정했다. NH투자증권도 최근 12개월 내 전망치를 기존 온스당 2,000달러에서 2,200달러로 10% 높였고 대신증권 역시 금값 전망치 상단을 기존 1,900달러에서 2,100달러로 상향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값이 2,000달러에 도달하면 일시적으로 차익실현 매물이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도 “글로벌 통화완화 기조가 유지되는 한 금값이 강세를 보일 것이며 고점 논란 역시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