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고전통해 세상읽기] 지출호쟁(知出乎爭)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지식은 쟁론으로 인해 가지 치게돼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례 많아

비중 큰 사안에 관심 갖고 설득 통해

서로 만족하는 결론 도출 습관 길러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지난 1970~1980년대는 민주화 대 독재가 사회의 핵심 의제를 차지했다. 언론·학원·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와 평등의 요구를 외쳤지만 모두 민주화로 귀결됐다. 이 때문에 각계각층이 다소 의견이 다르더라도 대동단결할 수 있었다. 작은 차이가 끊임없는 분열로 이어지지 않고 대의를 존중해 공동의 보조를 맞췄다. 이를 반영하듯 정치는 여당과 야당의 양당제로 굳어지고 사회는 전국 단위의 조직이 많았다.

민주화가 정착되고 소비사회가 도래하면서 더 이상 민주화 대 독재의 구도가 먹혀들지 않게 됐다. 사회적 의제도 다양해졌다.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는 복지 정책도 주장이 엇갈리고 부동산을 안정시키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며 대학 입시도 사람마다 다르고 반려동물을 둘러싸고도 생각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가 다원주의로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정당은 양당이 주도하지만 군소정당이 있고 사회도 전국 단위의 조직이 있지만 취미와 관심을 공유하는 다양한 단위의 결사가 생겨났다.

사회가 분화할수록 거대 담론보다 미세 논의가 사람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이는 TV 채널의 다변화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시민의 관심이 다양하고 지식이 공유되면서 공론의 장에서 객관적 타당성보다 주관적 확신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토론을 진행하면 논의가 하나로 모이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며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사람들의 주장이 다르므로 공론의 장에 나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론 없는 토론이 계속되다 보니 이견을 가진 사람끼리의 토론보다 서로 옳다고 믿는 사람들끼리의 연설이 호응을 얻는다.



춘추전국 시대에 묵자는 성왕이 가고 난 뒤 각자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가 도래하자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주장이 있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주장이 있고 천 사람이 있으면 천 가지 주장이 있다고 봤다. 이러한 일인일의(一人一義)에서 천인천의(千人千義)는 긴급한 사회적 의제를 두고 지루한 쟁론만을 낳는다. 이에 묵자는 윗사람의 의견을 주장하는 상동(尙同)을 통해 끊임없는 쟁론의 소모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장자는 쟁론의 시대를 묵자보다 훨씬 더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사람의 덕성은 명예로 인해 흔들리고 지식은 쟁론으로 인해 가지를 치게 된다. 명예는 상대를 헐뜯으면서 높아지고 지식은 상대를 이기려는 경쟁의 도구이다(덕탕호명·德蕩乎名 지출호쟁·知出乎爭. 명야자·名也者 상알야·相軋也. 지자야·知者也 쟁지기야·爭之器也).”


오늘날 묵자의 진단은 유효하지만 그의 해결책은 타당하지 않다. 윗사람이라고 해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한다는 보증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장자는 얼핏 보면 반지성주의로 지식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 악화시키므로 폐기를 주장하는 듯하다. 사실 장자는 지식의 폐기보다 지식의 오남용을 경고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지식의 힘으로 미지의 세계를 좁히고 기지의 세계를 넓힌다. 이를 통해 사람은 더 많은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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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시대의 사람들은 묵자의 주장처럼 제 주장만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장자의 주장처럼 상대의 주장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별의별 논리를 동원했다. 지식이 아무런 제약 없이 논의되는 난장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끊임없는 분열로 끝내 수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나만이 옳고 나만이 진리를 소유했다는 지식의 독재자가 늘어난다는 점에서는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자고 나면 새로운 사건과 의제가 제기된다. 앞서 있었던 사건과 의제가 제대로 논의돼 매듭지어지기 전에 또 다른 화제가 등장한다. 이 새로운 화제가 중구난방인 사이에 또 다른 화제가 등장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나의 화제에 진득하게 관심을 갖고 끝을 보기보다 연일 생겨나는 새로운 화제로 갈아타거나 아예 관심을 닫게 된다. 장자가 말한 ‘지출호쟁’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큰 비중을 갖는 사안에 진득하게 관심을 가지며 설득을 통해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시스템과 습관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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