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동향

'5% 상한' 무용지물 논란에도…"세입자가 고집 피우겠나" 팔짱낀 정부

세입자 거부땐 '5% 이내'도 못올리는데

분쟁조정위원회도 거부 강제 방법 없어

소송해도 계약갱신 전 결론내기 어려워

제한땐 집수리 등 비용 떠넘길 가능성 커

'손해보전' 많아질까 세입자도 전전긍긍

1일 서울 여의도에서 부동산 관련 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 3법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1일 서울 여의도에서 부동산 관련 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 3법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에서 전월세상한제로 정한 임대료 ‘5% 상한’이 세입자가 거부할 경우 사실상 무력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 제도 아래서는 5% 이하라도 세입자가 이를 거부하면 임대료 인상 자체가 불가능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정이 관계기관의 의견청취나 협의·토론 등 입법과정에 필요한 통상적 절차를 생략한 채 초고속 처리하면서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민원인이 질의한 ‘세입자가 5% 인상을 거부할 경우 계약을 거부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대해 이같이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31일부터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임대인(집주인)이 임대차 계약갱신 시 5% 범위에서 인상하려고 해도 임차인(세입자)이 거절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기존에는 계약종료 전 임대료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집주인이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약갱신청구권(2+2년)’으로 세입자는 재계약 권한을 갖게 된 반면 집주인은 임대료 상한에 대한 의무만 있을 뿐 세를 올리거나 재계약을 거부할 권한이 없어지게 됐다.

0415A01 임대료‘5% 이내’거절 시 대응·한계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상식적인 선에서 인상폭에 대한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성의 없는 답변만 내놓을 뿐이다. 임대료 인상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집주인이 선택 가능한 방법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대한 조정 신청이나 민사소송밖에 없다. 하지만 분쟁조정위는 임차인이 조정절차를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고 민사소송은 확정판결까지 긴 시간이 걸려 계약갱신 전에 결론을 내기 어렵다.

사실상 세입자가 “전월세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버티기에 들어가면 집주인은 기존 계약 내용대로 재계약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집주인에게 계약갱신 의사만 밝힌 뒤 연락이 아예 되지 않고 계약 만료일까지 잠적해버리면 손쓸 방도가 전혀 없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 제도에서는 ‘원만한 협의’를 기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졸속 입법에 곳곳서 민원…지자체도 자료 없어 손놔


# “법에서 정한 대로 ‘5% 인상’을 하려고 해도 세입자가 거절하면 못 올린다고 합니다. ‘버티기’로 나오는 세입자와 재계약(계약갱신)을 거절하면 오히려 제가 과태료 대상이 된다고 하네요.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서울에서 임대사업을 하는 A씨는 최근 전월세상한제 도입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에 문의했다가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전세금을 5% 올리려는데 만약 임차인이 거절하면 재계약을 거부해도 되느냐’에 대한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재계약 거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를 이유로 재계약을 거절하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였다. A씨는 “이럴 거면 대체 ‘5% 상한’은 뭐하러 정한 거냐”고 하소연했다. 충분한 사전 논의 및 검토 없이 시행된 ‘임대차 3법’의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혼선에 대해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집주인과 임차인이 이전보다 더 많은 협의를 하는 것은 제도 시행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이다.

0415A03 임대차 재계약 거절 가능한 경우


◇‘5% 상한’ 허점에도 정부는 “자연스러운 일”=전월세상한제의 핵심인 ‘5% 룰’마저 벌써부터 허점이 드러날 정도로 부실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전월세상한제로 이득을 보게 된 세입자가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분쟁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조속히 관련 해설서를 제작·배포하고 분쟁조정위원회를 확대·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정도다.

이러는 동안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토부가 임대차제도 관련 문의처로 소개한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에 해당 사안을 문의하자 “이런 경우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라는 말밖에 할 게 없다”며 “문의는 많이 오는데 답변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우리도 난처한 상황”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문제는 유일한 대응방안인 분쟁조정위도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행 규정상 세입자가 분쟁조정위의 조정 절차를 거부하면 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까스로 조정안이 나오더라도 세입자가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사실상 임차인·임대인의 상식적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대주택사업자들은 더 난리다. 이들은 민간임대주택특별법상 재계약 해지 사유에 ‘5% 범위 내로 임대료 증액을 요구했으나 임차인과 상호 협의가 안 될 경우’를 포함시켜달라는 청원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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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제도에 곳곳 혼선…전문가 “졸속입법”=이 밖에도 졸속으로 시행된 임대차 3법에 따른 혼선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존 임대차 거래 관행을 180도 뒤집는 제도를 시행하면서도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다 보니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한 집주인은 “전월세 만기를 6개월 앞두고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해서 새로운 세입자를 알아보는 와중에 임차인이 만기를 앞두고 뒤늦게 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하느냐”며 “제대로 답변해주는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세입자들 역시 고충이 크다. 임대료 인상 제한에 막힌 집주인들이 예전보다 더욱 깐깐하게 집수리 비용 등을 청구하는 식으로 ‘손해보전’에 나설 경우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이 한 예다.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제도가 시행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법령에 담을 수는 없다”며 “분쟁조정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으로, 이를 통해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졸속입법’이 시장의 불안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다양한 예외사항을 예상하지 못한 졸속입법”이라며 “당분간 혼선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부동산정책 3연타에…서울 아파트는 전세가 5억 '초읽기'


0415A03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 추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 5억원 시대가 임박했다. 6·17대책과 7·10대책, 임대차 3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책추진 과정에서 전세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졌기 때문이다.

3일 KB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4억9,922만원을 기록했다. 전달(4억9,148만원)보다 774만원이 올라 통상적인 상승세를 뛰어넘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강북 14개 구의 평균 아파트 전셋값이 7월 4억180만원을 기록해 KB국민은행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1년 6월 이후 처음으로 4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강남 11개 구의 평균 전세가는 5억8,484만원이다.

시장에서는 전셋값이 치솟는 일차적인 원인으로 6·17대책과 7·10대책으로 인한 전세 매물 감소를 꼽는다. 정부는 6·17대책에서 재건축 조합원이 새 아파트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을 실거주하도록 했다. 이어 7·10대책에서는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세를 주던 집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6월부터 임대차 3법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집주인들이 법 시행 전 미리 4년치의 임대료 상승분을 반영해 보증금을 책정하는 움직임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5월까지 4억9,000만원에 거래됐던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DMC래미안e편한세상’ 전용 84.95㎡는 7월15일 8억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지난달 31일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아이파크 전용 85㎡가 전세보증금 14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앞서 10억원에 전세 계약된 같은 평형의 아파트보다 보증금이 4억원 넘게 올랐다.

한편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2018년 4월부터 2019년 6월까지 15개월 중 10개월이 하락할 정도로 안정세를 보였다.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 집값이 상승하면서 전셋값도 같이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임대차 3법 논의가 본격화한 올 6월 이후 급등했다.

진동영·권혁준·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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