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창간기획] "美, 부채관리 위해 인플레 용인...신흥국 '빚폭탄' 터질수도"

■해외특별인터뷰-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

연준, 경기회복 고려 금리인상 어려워...인플레 3~4% 갈수도

신흥국·개도국선 자금 1,000억弗 이탈 '금융위기 때의 3배'

좀비기업·투자 부실 가능성에 기업 부채 집중 사전 차단해야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길게는 10년 동안 2% 미만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 넘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것이라는 점과 이것이 점점 커지는 연방정부 부채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국제금융 전문가인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경제신문 창간 60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시장은 장기간 낮은 물가상승률을 예측하고 있지만 정부 지출 확대와 대규모 유동성에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는 공공 부문 지출의 큰 증가와 연준의 유동성으로 인한 일부 인플레이션을 보고 있다”면서도 “다만 공공지출 증가는 가계의 민간지출 감소를 메우고 있고 기업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제 상황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가 약해질 수 있어 전체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이 항상 사물을 옳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견해에는 일리가 있다”고 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물가상승률이 지금보다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기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는 연준은 인플레이션에도 금리를 올리기 어려워 이를 묵인할 것이며, 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방정부 부채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월가에서는 연준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섰던 과거의 관행을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실질 부채 규모를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앞서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코로나19 대응에 미국 연방정부의 2020회계연도(2019년 10월~2020년 9월) 재정적자가 3조7,000억달러(약 4,41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그럼에도 지난 1980년대 13%에 이르는 고인플레이션의 교훈이 미국 사회에는 아직 생생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연준이 2% 넘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한다는 것은 10%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3~4%라는 뜻”이라고 전했다.

미국 경기에 대해서는 ‘더블딥(double dip·이중침체)’ 가능성이 높다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며 “더블딥 가능성이 확실히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경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가을에 날씨가 더 추워지거나 독감 계절이 오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어떻게 될 것인지와 언제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경기회복에 대한 질문은 경제학자가 아닌 역학자가 더 잘 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게 둔화할 경우 부채위기가 앞당겨질 수 있을까. 아이컨그린 교수는 1차적으로 선진국과 신흥국을 나눠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국 통화로 채무를 표시하는 국가들은 자국 중앙은행에 의존해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율을 유지할 수 있어 부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의 일본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이런 국가에서는 부채위기가 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기업들의 부채가 늘어나는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아이컨그린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빚이 많으면 다른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이 기업 부문에 집중되면 좀비기업과 투자 부실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재원이 적정한 곳에 배분되지 않아 잠재성장률을 갉아먹고 경쟁력도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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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위기 우려가 컸던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부채위기가 폭발할 수 있는 나라는 자국 통화로 부채가 표시되지 않는 나라로 이들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이 시장을 지원할 수 없다”며 “이탈리아는 중앙은행이 없지만 다행히도 유럽중앙은행(ECB)이 채권시장을 지원하고 유럽연합(EU)의 새로운 재정기구가 적자지출을 보조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EU는 7,500억유로(약 1,058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 조성에 합의했는데 이 같은 대책들에 이탈리아도 재정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신흥시장은 다르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신흥시장의 기업부채와 저소득 국가의 정부부채는 외화로 표시된다”며 “그곳이 부채위기 폭발의 위험이 집중된 곳”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1,000억달러 이상의 금융자금이 흘러나왔다”며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 2개월간 이곳에서 빠져나간 금융자금의 3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관계에 대해서는 “코로나19를 억제하지 못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것”이라고 진단한 뒤 “중국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하고 불공정 무역관계를 논하고 영사관을 폐쇄하기 위한 핑계로 산업스파이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아이컨그린 교수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 같은 대중 강경 노선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는 “흥미로운 것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새 행정부가 중국을 다르게 다룰 것이냐 하는 부분”이라며 “나는 바이든과 그의 팀이 중국의 무역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우려를 공유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바뀌었고 이는 다음 정권에서 다시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접근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아이컨그린 교수의 견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지적재산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다른 국가들과의 연합을 통해 중국 문제를 다루려고 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전과 차이가 날 것”이라고 점쳤다.

최근의 달러 약세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당분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위상은 유지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세계 금융 시스템이 달러로 운영되고 연준이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며 “이 같은 사실들은 코로나19 위기 초기에 다시 강조되고 강화됐다”고 밝혔다.

달러 약세와 금값 급등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암호화폐 투자를 투기로 생각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옳다고 보지 않는다”며 “암호화폐는 마치 다리가 달린 것처럼 국경을 넘어 결제가 가능한, 실질적으로 가시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금 자체에는 어떤 본질적인 가치도 없다. 다른 이들이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그런 측면에서 암호화폐도 앞으로 더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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