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4일 주택공급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주택담보대출 제한, 종부세율 인상, 거래세율 현실화 등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시행했던 점을 고려하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급대책에도 눈길을 준 것은 다행이다.
정부는 신규 주택이 예상을 뛰어넘는 13만호이고 이미 발표했던 수치까지 합치면 26만호에 달하는 물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공급의 적정성 여부는 전체 물량이 아니라 수요자의 선호에 비춰 살펴봐야 한다. 쇠고기로 치면 한우와 외국산에 대한 선호가 다르며 1등급과 2등급의 수요는 구분돼야 한다. 더욱이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강화해 소위 똘똘한 한 채인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를 크게 늘린 결과 이에 대한 공급이 문제의 초점이 되고 있다. 품질 면에서 입지·교통·브랜드 등 요건을 갖춘 주택의 수요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정부가 금기로 여겨왔던 50층 건축, 용적률 500% 등 고밀재개발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언론이 제목으로 뽑은 것처럼 특기할 만하다. 다만 너무 많은 조건을 붙여 실제로 잘 이뤄질지 의문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참여하고 주민 3분의2가 동의해야 하며 용적률 상향으로 인한 혜택의 50∼70%를 기부채납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한술 더 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브리핑 때 용적률 증가에 따른 기대수익률의 90% 이상을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용적률을 올려 도심 선호지역에 대한 공급물량은 늘리되 그로부터 파생되는 이득은 철저하게 환수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인데 그야말로 희망 사항에 그칠 수도 있다. 일본은 도쿄역 부지 용적률을 2,000%로 확대하는 등의 정책을 펴 도심 개발에 성공했다. 정부가 발표한 층수 제한 완화와 용적률 상향 등이 실제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민간 건설사의 참여 확대 방안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정부 발표에서는 생애최초 주택, 신혼부부 주택 등을 위한 공공 부문의 역할이 강조됐다. 조달청 서울청사 등 신규 확보부지의 이용도 공공 임대나 지분 참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땅히 공공 부문에서 담당해야 할 일이지만 주택시장 전체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주택 공급물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 부문의 적극적인 참여 유도가 긴요하다.
주택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얘기가 회자한다. 이 사다리는 무주택자가 전세를 거쳐 유주택자로 되는 일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유주택자도 25평의 국민주택에서 30평대·40평대로 확장하는 사다리를 바라보며, 실제로 우리 국민의 생애를 보면 한 집에 계속 살기보다 자녀가 커감에 따라 보다 큰 집으로 옮겨가는 일이 흔하다.
공공 분야와 민간 분야를 이원적으로 구분할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간 부문에 대한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 제공이 수반돼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주택 금융제도도 9억원 이하, 15억원 이상 식으로 단층적으로 구분해 운용해서는 안 된다. 주택의 다양성을 해치고 결과적으로 주택 사다리의 이동을 어렵게 한다. 서울아파트 중위가격은 이미 9억원을 넘어섰다. 이 기준을 고집하는 것은 난센스며 그렇다고 새롭게 10억원 등을 기준으로 하면 다음에 또 고쳐야 한다. 단절적으로 운용할 게 아니라 주택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점차 담보인정비율을 낮춰 적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
근본적으로는 공공의 역할을 늘리고 규제를 강화해도 주택가격은 시장 수급 기능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받아들여야만 올바른 정책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