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 칼럼] '경계 실패'...근거없는 경구와 맹신의 덫

군장병 경계 부담 갈수록 증가

인식 변화·시스템 구축 필요

과학화 감시 장비 투자 늘리고

부대 재배치 장기계획 세워야




한국군은 세계에서 경계 근무 비중이 가장 큰 군대다. 당연하다. 북한과 정전 상태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군도 ‘철통 같은 경계 태세’를 줄곧 강조해왔다. 탈북 새터민이 강화 지역의 수로를 통해 월북한 사건은 분명한 ‘경계 실패’다. 해당 지역 해병대 2사단장이 보직 해임되고 해병대 사령관과 육군 수도군단장이 엄중 경고를 받았다. 중요한 것은 앞날이다. 사태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인식을 바꾸고 새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면 비슷한 사례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경계 노이로제’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점이다. 한국에는 경계에 관한 함축적이고 교훈적인 경구가 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흔히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말이라고 인용한다. 기자도 그런 적이 있음을 자백한다. 하지만 정말로 맥아더가 그런 말을 했을까. 근거가 없다. 영어권의 어떤 자료에도 비슷한 문구는 검색되지 않는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도 유사 문구조차 찾을 수 없다. 오로지 한국에서만 맥아더의 말씀으로 너나없이 인용하는 문장이다. 태평양전쟁 초기 필리핀 방어전에서 경계에 실패했던 맥아더 장군이 과연 자신의 과오를 들출 만한 말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근거가 불명확한 말까지 나도는 현상은 우리가 경계를 그만큼 중시했다는 방증이리라.

문제는 맹신이다. 우리와 달리 경계에 병력을 크게 투입하지 않는 군대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미군은 경계병을 대거 운용하지 않는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은 초병도 없다. 미군 부대의 정문 초소도 한국인 근로자(근무지원단)가 대신한다. 대신 경계에 투입될 시간을 훈련과 전술·전기 연마, 휴식에 돌린다. 한국군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미군처럼 민간에 부대 외곽과 정문 경비를 맡기려면 예산 증가가 필연적이다. 김포 지역의 월북 사건은 역설적으로 우리 장병들의 경계 부담이 얼마나 큰지 말해준다.


강화·김포 지역의 섬까지 포함해 해병 2사단이 담당하는 지역은 모두 255㎞. 이를 직선으로 그으면 80여㎞, 철책을 포함한 방어선은 약 100㎞에 이른다. 3개 여단이 경계를 담당하지만 예비대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몇 개 대대가 투입될 뿐이다. 100㎞를 이들이 책임지려면 1인당 70~100m를 맡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대장부터 조리병까지 전 병력이 24시간 투입될 때 이렇다. 취침과 식사 시간, 주야간 교대, 휴가와 행정 및 의무병 등 열외를 감안하면 실제 투입 가능한 인원은 훨씬 줄어든다. 해안이나 강가는 멀리 넓게 감시할 수 있어 해병대의 경계 영역이 육군보다 넓다고 해도 과도한 부담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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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잘 지켜냈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병역 자원이 감소하고 분대 정원이 축소된 마당에 부담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답은 한 가지다. 병력을 짜내기 어렵다면 과학화 경계 장비 투자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육상용 일색인 감시 장비에 해안 및 강안에 적합한 장비를 추가하고 물꼬 같은 취약 지역을 집중 경계하는 게 일차적인 대안이다. 경계 실패 논란을 계기로 보다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됐던 김병관 예비역 육군대장(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의 인본주의적 국방 개혁론을 검토할 때가 왔다.

김 전 부사령관 주장의 요지는 전방 병력의 후방 재배치. 2차대전형 무기 체계로는 30만명을 전방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지만 무기가 현대화한 마당이라면 후방으로 병력을 빼고 전방은 과학화 장비로 감시하자는 것이다. 유사시 전방병력 손실률을 40%에서 17%로 줄일 수도 있다. 해병대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국가전략기동부대로 거듭나려면 해군 2함대가 위치한 평택 이남으로 재배치가 필요하다. 포항 해병 1사단이 동해, 해병 2사단이 서해를 관장하고 강화도와 제주도·울릉도 같은 전략도서를 방위하는 구도다.

사회든 군이든 실패할 수 있다.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실패는 오히려 보약이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근거 없는 경구와 맹신의 늪에 머물며 실패를 되풀이할 것인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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