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대해 ‘편면적 구속력’이라는 강제성 있는 제도 도입을 언급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2~3년간 금융사가 분조위 결정을 수용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자 라임 무역금융펀드 답변 시일을 보름 앞두고 압박 수위를 높이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은행 및 금융투자업계에서 금감원 분조위를 통해 분쟁조정이 이뤄진 건수는 총 23건으로 이 중 ‘불수용’은 8건이다. 불수용 사례 중 4건은 지난해 12월 키코(KIKO) 상품을 판매한 신한·우리·하나·대구·씨티·산업은행의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 책임과 관련한 사안이다. 당시 분조위는 금융사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도록 결정했지만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5개 기업은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들 은행은 소멸시효 경과에 따른 배임 소지와 나머지 피해 기업에 대한 추가 배상 부담, 채무탕감 과다 등을 사유로 제시했다. 금감원 측은 “8건 중 2건은 소비자 측에서 조정안을 수락하지 않았고, 나머지 6건은 모두 금융사가 불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전체 분쟁조정 중 25% 정도가 금융사의 불수용으로 무산된 셈이다.
분조위 조정안은 권고에 불과하지만 양측이 이를 모두 수락하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한다. 그간 분쟁조정에서 대부분 금융사는 권고안을 수용했지만 2018년 일부 보험사가 즉시연금 과소지급분을 가입자에게 돌려주라는 분조위 결과를 거절하면서 판매사들 사이에서 ‘거부’ 분위기가 확산됐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보험업계의 불수용이 많고 은행·금투업계의 경우 금융사의 잘못이 명백한데도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상품 판매사가 분조위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금감원의 리더십도 손상을 입지만 더 큰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고 소송으로 비화할 경우 개인투자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윤 원장이 ‘편면적 구속력’을 임원회의에서 언급한 이유다. 윤 원장은 11일 임원회의에서 “금감원 관련 부서가 분쟁조정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편면적 구속력’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편면적 구속력은 소비자가 조정안을 수락하면 금융회사가 무조건 이를 따르게 하는 제도다. 올해 초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편면적 구속력이 언급된 바 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우리은행·하나은행·신한금융투자·미래에셋대우 등 4개 금융사가 라임무역금융펀드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하고 사상 첫 100% 배상 결정을 내린 데 대해 권고안 수용 결정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자 분조위 권고안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라임 무역금융펀드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신한금융투자마저 섣불리 수용 의사를 밝히지 못하자 ‘편면적 구속력’ 등을 포함한 강제성 있는 제도 도입 요구가 늘어난 상황”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당국의 움직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국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편면적 구속력 발언 이후 이사진의 심경 변화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배임 문제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투자 상품은 손익이 발생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일시적인 손실에도 금감원 분조위를 이용하려는 ‘블랙 컨슈머’가 늘어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서지혜·이혜진·송종호기자 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