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중호우에 급격한 방류로 하류 지역에 최악의 물 피해를 입힌 섬진강댐이 지난 1961년 설계 당시 정한 홍수기제한수위 등 댐 관리규정을 한 번도 개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기간에 강수가 집중되는 기후변화에 맞지 않은 낡은 기준 때문에 홍수 조절 기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따르면 1965년 완공된 섬진강댐의 계획홍수위(EL.m)는 197.7m, 상시만수위 196.5m, 홍수기제한수위는 196.5m로 1961년 설계 당시 기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계획홍수위는 홍수조절을 위해 유입홍수를 저장할 수 있는 최고수위, 상시만수위는 농업용수 등 이수(利水) 목적으로 활용되는 최고수위를 말한다. 홍수기제한수위는 홍수 우려가 큰 매년 6월21일부터 9월20일까지 유지해야 하는 최고수위다.
섬진강댐, 60년전 홍수기준 사용
섬진강댐은 초과 시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계획홍수위와 홍수기 때 물을 최대한 채울 수 있는 홍수기제한수위 차이가 1.2m에 불과하다. 물이 급격히 유입됐을 때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거의 없는 셈이다. 댐이 최대한 저장할 수 있는 물의 99.3%를 농업용수나 생활용수 등 이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홍수에 대비해 물을 조절할 수 있는 용량은 0.7%에 불과한 기형적 구조다. 댐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섬진강댐의 홍수조절용량은 3,200만㎥인 반면 계획홍수위와 홍수기제한수위 차이가 7.7m인 소양강댐의 홍수조절용량은 5억㎥다.
7~8일 집중호우 당시 섬진강댐은 전날인 6일까지 홍수기제한수위보다 불과 3m 낮은 193.46m 수준에서 수위를 조절했다. 지난해까지 섬진강댐은 7~8월 수위를 180~185m 수준으로 유지했다. 결국 댐 수위가 순식간에 계획홍수위를 넘기면서 붕괴 위험이 생기자 평상시(5일 기준 119.7㎥)보다 10배 많은 초당 1,868㎥를 방류해 피해를 키웠다. 수자원공사는 기상청 예보보다 많은 비가 내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류를 늘렸다고 책임을 회피했지만 실제로는 한계치까지 물을 꽉 채워 운영하다가 댐 운영에 실패한 것이다.
섬진강댐과 동시에 수해가 발생한 합천댐 역시 1982년 설계 이후 기준 수위를 바꾼 적이 없다. 합천댐 홍수조절공간은 3m 수준이다. 이번 집중호우 때도 홍수기제한수위(176m)를 불과 1m 남긴 채로 운영했다. 용담댐은 비교적 최근인 2001년 완공됐지만 설계는 1990년부터 이뤄졌다. 홍수조절공간은 4m로 다른 댐에 비해 여유로운 편이지만 집중 호우가 오기 전부터 이미 홍수기제한수위(261.5m)를 넘긴 상태였다.
기후변황 등 반영 제대로 못해
안전 문제 때문에 댐 설계 과정에서 정한 뒤 바꿀 수 없는 계획홍수위와 달리 홍수기제한수위는 조절 가능하지만 바꾼 사례가 거의 없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설계 당시 기상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홍수기제한수위 등 기준 수위를 정하는데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며 “섬진강댐은 오래전 개발한 댐이기 때문에 최근과 같은 극한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댐의 홍수 관련 기준이 시대 흐름과 기후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섬진강댐의 홍수기제한수위를 최근 기후 변화에 맞게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농업용수 등 이수 공간도 현실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발 등으로 농경지가 크게 줄면서 농업용수 수요가 감소했는데도 과거 기준에 맞춰 용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농업용수 등 이수에 너무 많이 신경을 쓰다 보니 치수 공간이 줄어들어 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이라며 “농업용수에 대한 정확한 수요 예측을 통해 적정한 용량을 확보한 뒤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