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현대판 청백리와 '인사는 만사'

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전 인사혁신처장

다주택 여부가 공직자의 기준 부상

시장경제서 '조선 청백리' 찾는 꼴

의지·능력·바른태도 보고 뽑아야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청와대 참모진이 물갈이됐다. 청와대는 이 과정에서 신임 수석들 모두가 소유 중이던 주택 두 채 중 한 채를 처분 중이거나 1주택자 또는 무주택자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0일 지명된 국세청장 후보자 역시 무주택자이며 지난 5일 취임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도 아파트 한 채를 팔아 세종시 분양권 하나만 남겨놓았다고 강조했다. 이제 고위공직자 임명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다주택자인지 아닌지가 된 듯하다.

뭔가 어색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사유재산 처분을 강요하는 것도 이상하고 적법한 부의 축적이 공직 임명에 결격사유가 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물욕과 담쌓고 유교경전을 치세 철학으로 삼던 관리를 청백리로 칭송했던 조선 시대 관직 문화를 답습하는 듯하다.

공직자를 뽑을 때는 크게 세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헌신적 의지, 의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전문적 능력, 공동체를 바라보는 이타적 시각이 그것이다. 이 중 하나라도 부족한 사람이 공적 업무를 담당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체 구성원들에게 전가된다. 공공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사람은 시류에 떠밀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기에 십상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국가의 이익을 해하고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부적절한 태도로 삶을 경영해온 사람도 언제든지 고용주인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위험이 있다.


자기 앞가림을 하는 경제적 역량도 공직후보자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정당한 수단으로 일군 자산이 그 지표가 될 것이다. 적어도 자기 손으로 돈을 벌고 세금을 내고 자산을 축적하기 위해 발버둥 쳐본 사람이어야 무한경쟁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죽어라 뛰는 평범한 국민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국가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끊임없이 파이를 키우지 않으면 도태되는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경제관념이 어두운 사람이 그 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먹고살 길을 닦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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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사의 기준을 살펴보자. 공직관, 공직 수행능력, 삶의 발자취보다 재산 문제를 먼저 고려한 인사로 보인다. 국가 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경제적 욕구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국민 모두가 내 집을 가질 수는 없지만 모두가 내 집을 갖고 싶어한다. 성실하게 돈 벌고 아끼고 모아 집 장만하고 세금 잘 냈던 사람을 임명해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설혹 집이 두 채가 있다고 하더라도 범죄로 이룬 자산이나 투기의 결과가 아니라면 굳이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조선 시대의 청백리를 공직자의 이상향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공직자상은 달라져야 한다. 재산을 적게 모은 사람이 도덕적이고 국정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맞는 것일까. 이제는 의지와 능력과 바른 태도를 갖춘 사람 중 국가 경제발전에 뜻이 있고 국민의 부를 키워줄 역량이 있는 사람을 공직자의 이상향으로 삼아야 한다. 사글셋방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조금씩 자신의 삶의 조건을 개척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부분 국민들의 힘겨운 삶의 무게를 이해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준비가 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국민은 내 집 한 채를 갖게 해줄 리더를 바란다.

그것이 바른 인사 기준이고 좋은 인사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좋은 사람을 뽑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게 아니다. 좋은 사람을 가려 뽑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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