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탈리아에서 한 아버지가 장성한 아들이 직장을 얻어 자립하도록 법원이 강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아들은 남들보다 몇 년 늦은 28세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영화 공부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주장했다. 아버지는 이혼 합의 조건으로 아들을 부양해왔지만 더는 돈을 댈 수 없다고 버텼다. 사건을 맡은 모데나 지방법원은 아들의 대학원 학비도 아버지가 지원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이탈리아의 ‘밤보치오니(bamboccioni)’ 문제의 심각성이 이 판결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밤보치오니는 ‘쓸모없는 큰 아기’를 뜻하는 이탈리아 신조어로 성인이 돼서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당시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법적 분쟁이 이탈리아에서 연간 8,000건가량 발생한다고 보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탈리아 청년실업률이 한때 40%대까지 치솟았을 정도였으니 법적 분쟁이 증가하지 않을 수 없다. 잔 에토레 가시니 이탈리아 결혼전문 변호사협회장은 최근 유사 소송이 수십만 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밤보치오니 현상은 저성장기에 접어들고 청년실업률이 급증한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젊은이를 가리켜 영화 제목에서 유래한 ‘탕기 세대’로, 영국에서는 ‘부모의 연금을 좀먹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앞글자를 따 ‘키퍼스(kippers)’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법원이 며칠 전 밤보치오니 관련 소송에서 이번에는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2만 유로(약 2,800만원)의 연봉을 받는 35세의 시간강사인 아들이 생활비가 충분하지 않다며 부모에게 재정 지원을 요구한 소송에서 패소 판결했다. 1심에서 부모가 매달 300유로(약 42만원)의 용돈을 지급하라고 한 판결을 뒤엎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장애를 가지지 않았다면 부모의 재정적 지원이 무한정 이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청년실업률이 10%를 넘나들며 올 들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해법을 둘러싸고 모두 지혜를 모아야겠다.
/오현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