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을 봐도 안을 봐도 답답한 거뿐입니다. 집값은 다락같이 오르고 있지, 회사는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답답하고…. 다른 일을 구하기도 어려우니, 일단 개인적인 관심 분야 중에서 창업하는 데 큰돈이 들어가지 않은 일을 중심으로 찾아봤고 결국 이걸 하게 된 거예요.”
한 중견 기업에 다니는 이모씨는 지난해 여성용품 전문 쇼핑몰을 만들었다. 회사 업무를 보는 시간에는 부인이 일을 맡고 퇴근 후 같이 쇼핑몰 업무를 보고 있다. 올 초 선보인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현재는 수입이 본업보다 더 나오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계속 다닐 생각이다. 이씨는 “지금 수익은 쏠쏠하지만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회사 몰래 사업을 하는 것이지만 부인이 전적으로 맡으면서 내가 도와주는 형태라 근근이 꾸려 갈 수 있는 만큼 당장은 계속 이 체제를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저성장 시대다. 수익을 내기 힘든 기업들은 직원을 챙겨주지 못한다. 생산성 제고가 지상과제가 되면서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은 일상이고 직원들도 능력만 있으면 직장을 바꾸는 데 거부감이 없다. 직원 입장에서는 ‘각자도생’해야 한다. 열심히 해서 직장 안에서 성공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안정적 직장이 사라졌다’는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못 느끼는 자아실현을 꿈꾸며 다른 일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혹자는 직장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시대’는 사라졌다고 말한다. 의사·변호사 등 이른바 선망의 직업들도 경쟁에 치여 힘든 판에 일반 직장인들의 불안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점점 부업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고 상처받은 자아도 보듬으려는 ‘사이드 허슬러’가 많아지는 이유다.
사이드 허슬러는 ‘투잡족’의 다른 이름이다. 주업 외에 부수입을 올린다는 이유로 이들은 실명 공개를 원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현재 티셔츠 디자인 등을 해 부수입을 쏠쏠하게 올리고 있는 A씨도 마찬가지다. A씨는 “직장에서 투잡을 권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몰래몰래 하던 일이 벌써 3년이나 됐다”고 말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옷을 디자인하는 일이 그의 부업이다. 그는 “취미로 그림·테니스를 하게 됐는데 테니스 옷이 생각보다 국내에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디자인을 시작해서 판매하게 됐다”며 “요즘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대부분 지켜지고 있어 저처럼 취미와 부업을 동시에 하는 이들이 좀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드 허슬러에게 직장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에서 마주한 현재의 일’이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는 “저와 같은 사이드 허슬러를 비롯해 취업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은 무엇보다 ‘안정적 직장이 사라졌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라며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직업을 계속 탐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지금의 직장도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50~60대까지 계속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며 “젊었을 때 더 돈을 벌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사이드 허슬러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기도 한다.
인테리어 소품 등을 수공예로 제작하는 ‘파랑숲’을 운영하고 있는 이진하 대표도 과거 광고 회사를 8년간 다녔다. 그는 “최종 결정을 클라이언트가 하다 보니 ‘내 것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은 내가 상상하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이것으로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에서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방송 작가를 하다가 취미 삼아 시작한 장신구 만들기가 이제 본업이 된 윤희망 캐럿팜 대표도 비슷한 케이스다. 그는 6년 동안 공중파 등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다 4년 전 시작한 ‘장신구 만들기’로 본업을 바꿨다. 윤 대표는 “방송 작가 일을 할 때도 화려한 귀고리를 하고 출근했을 만큼 장신구를 좋아했다”며 “몸과 정신이 너무 힘든 상황에서도 귀고리를 고르고 착용하는 순간만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꿋꿋하게 하고 다녔는데 이게 직접 귀고리 등 장신구를 만드는 데까지 발전해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특히 현재 일에 충실하게 임하는 게 새 진로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 트렌드 분석, 취재 등 제가 작가 시절에 했던 모든 경험이 도움이 됐다”며 “작가라는 과거의 일은 지금도 소중한 자양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안한 직장 생활, 부업을 갖기가 수월해진 시대 상황 등이 사이드 허슬러가 많아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의 일을 통해서는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는 현실이 문제”라며 “성취감을 느끼며 성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유튜브 등 플랫폼이 잘돼 있는 것도 사이드 허슬러가 많아지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적응으로 부업이나 창업을 하는 것은 성취감을 주는 등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두 가지를 다 하다가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며 “부업으로 ‘대박’을 노리는 것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사이드 허슬러의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일이 됐다.
대부분 회사의 눈치를 보면서 창업을 한다지만 적극적으로 사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게 최근 트렌드이기도 하다. 사업을 하고 싶은 욕망을 사내에서 소화되게끔 유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삼성·현대자동차·LG·한화·롯데 등 많은 대기업이 사내 벤처를 육성하거나 청년 스타트업 지원·투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웅진씽크빅의 경우는 사내 벤처였던 플랫폼 ‘놀이의발견’을 분사시킨 후 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 기업도 사내 벤처 스타트업을 키우고 있는데 기존의 조직 내에서는 성장 동력을 찾기 쉽지 않다”며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스타트업을 육성해 인재를 키우는 것이 회사에 결국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