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휘청거릴 정도의 강한 비바람을 뿌리는 제8호 태풍 ‘바비(BAVI)’가 한반도에 상륙했다. 26일 오후3시께 제주도에 상륙해 27일 새벽 수도권에 근접한 뒤 황해도에 상륙하고 오전 9시께 평양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태풍은 강풍 반경이 300km를 넘는데 제주도 해상을 지날 때 바람이 센 중심부의 최대풍속이 초당 45m 이상으로 2000년대 들어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상청의 태풍 분류상 ‘매우 강(초속 44~54m·시속 158~194㎞)’에 해당한다. 서해의 섬이나 서해안쪽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피해가 우려된다. 바람이 초속 40m 이상이면 걸어다니기가 힘들 정도고 심하면 자동차가 뒤집힐 수 있다. 올해 기록적인 장마로 곳곳에서 발생한 산사태·홍수·침수 피해를 복구도 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태풍 바비는 우리나라에 엄청난 인명·재산피해를 준 지난 2002년 ‘루사(246명·5조2,600억원)’와 2003년 ‘매미(141명·4조5,000억원)’보다 다소 위력이 센 것으로 추정된다. 기상청이 5월 새로 분류한 ‘초강력(최대초속 54m 초과)’ 태풍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강력하다.
태풍은 보통 필리핀 근처 적도 바다에서 발생해 북상하다가 제주도(위도 33도) 아래 위도 30도 선에서 북동쪽으로 곡선을 그리며 동해나 일본열도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바비는 대만 동쪽 해상의 고위도(북위 23. 5도)에서 발원해 아주 짧은 시간에 역대급 태풍으로 커지며 오히려 우리 서해상을 타고 이동한다. 지난해 ‘링링’과 이동경로가 비슷하지만 링링은 제주도 서쪽 해상을 지날 때 중심부 최대초속이 40m 규모였고 수도권쪽에서는 급격히 약화됐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바비의 경우 대만 동쪽 해상과 동중국해 해상 쪽으로 바닷물이 30도 이상으로 뜨겁고 제주 인근 해상도 거의 28도 이상이나 돼 태풍이 계속 발달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구는 지난 100년간 평균온도가 약 1도, 해수면은 약 20㎝ 상승하면서 여름철 폭염이나 집중호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건조한 지역은 가뭄이 더 자주 생기고 있다.
태풍(typhoon)은 태양 빛을 많이 쬐는 적도 바다가 뜨거워지며 따뜻한 수증기가 대기로 상승하는 과정에서 열을 내뿜어 더 큰 상승기류를 일으켜 생성된다. 많은 구름층이 형성돼 폭우가 쏟아지고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태풍도 회전하며 더 세진다. 태풍은 안쪽으로 갈수록 풍속이 증가하나 중심에는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고요한 ‘태풍의 눈’이 있다.
세계저으로 태풍의 이름은 제각각이다. 북대서양·카리브해·멕시코만에서 발생하면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벵골만 등에서 생기면 ‘사이클론(cyclone)’, 오스트레일리아 쪽 남태평양에서 시작되면 ‘윌리윌리(willy-willy)’라고 부른다. 토네이도(tornado)의 경우 북아메리카 대평원 등에서 깔때기 모양으로 초고속 소용돌이를 일으키는데 반경이 150~600m에 불과하고 이동거리도 짧고 몇 시간 내에 사라진다.
태풍은 지구 전체로 보면 순기능도 한다. 열대의 뜨거운 공기를 북쪽으로 순환시켜 지구 온도를 나름 균형 있게 맞춰준다. 대기를 맑게 하고 육지에 물을 뿌리고, 바다를 뒤집어줘 적조현상도 없애고 물고기나 해초에 알맞은 환경을 조성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강재식 박사는 “유리창이 태풍의 강한 압력으로 가운데가 밀려들어와 창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창틀과 창문을 테이프로 연속으로 붙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태풍 이름은…]
바비는 베트남 북쪽 산맥 이름
14개 나라 10개씩 제안 사용
태풍은 한국·미국·중국·일본·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 등 태평양 지역 14개 나라가 제출한 이름을 순서대로 쓴다. 총 140개를 28개씩 5개 조로 나눠 1조부터 5조까지 순차적으로 돌려 쓴다. 이번 태풍 ‘바비’는 베트남이 제출한 북쪽의 산맥 이름에서 유래됐다. 다만 과거 ‘루사’나 ‘매미’처럼 너무 큰 피해를 준 태풍은 각국이 협의해 다른 이름으로 교체한다.
남북한은 태풍의 피해가 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고 순한 동식물을 많이 제출했다. 우리나라는 개미·나리·장미·미리내·노루·제비·너구리·고니·메기·독수리, 북한은 종다리·버들·노을·민들레·날개·기러기·도라지·갈매기·수리개·메아리를 각각 냈다.
앞서 태풍 이름은 지난 1953년 호주의 기상예보관들이 싫어 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비공식적으로 쓴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 공군·해군에서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사용하다 성차별이라는 문제 제기가 나오자 1978년 이후 남성의 이름도 쓰기 시작했다. 1999년까지 괌에 위치한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영문 이름을 붙여 쓰다가 2000년부터 태풍위원회 회원국이 제출한 이름을 순서대로 사용하게 됐다. 앞서 세계기상기구는 1999년까지 1999년 3호 태풍의 경우 ‘9903’처럼 숫자로만 이름을 부여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