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2인자’였던 황각규 부회장이 퇴진하면서 올해 초까지 매각협상을 벌였던 이커머스 업체 티몬의 셈법이 꼬이게 됐다. 협상 ‘파트너’였던 황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사실상 유일한 인수후보였던 롯데그룹과의 끈도 끊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흑자 전환을 통해 다시 한 번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대주주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과 앵커에쿼티파트너스의 투자금 회수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황 부회장은 롯데그룹과 티몬의 가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티몬 사정에 정통한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황 부회장이 신격호 회장의 재가 아래 KKR·앵커 측과 협상을 해 올해 초 티몬 인수 직전까지 갔었지만 결국 가격에 대한 이견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며 “KKR과 앵커도 티몬을 팔아야 하는 데다 롯데도 온라인 부문 강화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멈춰있던 협상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는 황 부회장이 지난주 돌연 퇴진하면서 기류가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재계에선 그룹의 두 축인 유통과 화학 모두 동반 부진을 겪으면서 황 부회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용퇴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4분기 롯데쇼핑의 영업이익은 1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8.5% 급감했다. 반기 누적기준도 535억원으로 같은 기간 82.0% 줄었다. 지난 4월 티몬 인수 대신 택했던 온라인 쇼핑 플랫폼 ‘롯데온(on)’을 야심 차게 출범시켰던 것을 감아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롯데케미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4분기 영업손실 860억을 기록하며 7년 만에 적자 전환한 바 있다. 2·4분기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크게 뒷걸음질했다.
티몬의 셈법이 복잡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협상을 진두지휘했던 황 부회장이 퇴진하면서 롯데그룹과 새롭게 협상 판을 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실제로 황 부회장이 이끌던 경영전략실은 경영혁신실로 이름이 바뀐 뒤 인적구성원도 대대적으로 물갈이됐다. 인수합병(M&A)을 통해 롯데그룹을 키웠던 황 부회장이 퇴진한 것을 감안하면 티몬 인수를 바라보는 그룹 내 시각도 바뀔 수밖에 없다.
롯데가 인수를 결국 포기하게 될 경우 결국 티몬에게 선택지는 기업공개(IPO)만 남게 다. 티몬은 지난 4월 미래에셋대우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한 뒤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재무제표상 매출액도 거래액이 아닌 수수료 기준으로 바꾸면서 매출금액도 대폭 줄여 놓은 상황. 올해 2·4분기엔 순이용자 규모로 위메프를 제치고 업계 5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IPO에 성공하더라도 대주주인 KKR와 앵커는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상장을 통해 일부 자금을 회수할 순 있지만 경영권 지분을 남겨놓아야 하는 탓에 많은 자금을 회수하긴 어렵다. 더욱이 펀드 청산시기가 있는 PEF인 만큼 결국 상장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경영권을 팔아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2015년 그루폰으로부터 티몬 지분 59%를 인수할 당시 기업가치(EV)는 7억8,200만달러(약 8,600억원) 가량이었다. 매년 적자를 이어온 탓에 배당금을 통해 회수한 금액도 전무하다. 현재 KKR과 앵커는 티몬 지분 98.4%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