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정부 비판 '시무 7조' 청원 은폐 논란

30대南이 부동산·외교 등 짚은 글

12일 처음 올라왔다가 사라지자

"고의적으로 숨겼다" 의혹 줄이어

靑 "내부절차 따른 것" 정면 반박

기독교 지도자들과 간담 가진 文

"대통령 욕해서 기분풀리면 좋은일"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한국 개신교회 지도자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한국 개신교회 지도자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상소문 형식으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국민청원이 은폐됐다는 지적으로 한때 여론이 뜨겁게 달궈졌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이 나라가 폐하의 것이 아니다”라고 한 이 청원은 공개 여부를 결정짓는 청와대 내부 절차과정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현재는 게시판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청와대는 27일 고의성을 띤 은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이날 기독교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엄중 대응 입장을 밝히면서도 “대통령을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논란이 된 청원은 지난 12일 게시판에 올라온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時務)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살펴주시옵소서’라는 제목의 글이다. 최치원의 ‘시무 10조’, 최승로의 ‘시무 28조’처럼 충신이 왕에게 간언하는 형식을 빌려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이날 오후9시 기준 13만5,0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해당 글은 30대의 한 평범한 남성 가장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청원이 잠시 사라진 것을 두고 은폐 논란이 빚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전 동의 인원 100명을 넘길 경우 공개 또는 비공개 여부를 검토하는데 이 프로세스상에 있던 것을 숨겼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오늘 운영위가 열려 다른 청원과 함께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청원 중에서도 이번 청원의 행방에 이목이 집중됐던 것은 예스러운 문체와 함께 정부 정책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이 담겼기 때문이다. 청원인은 부동산·인사·세금·외교 등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었다. 청원인은 특히 규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문제시하며 “그저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거주자를 잡아 족치시어 무주택자의 지지율을 얻겠다는 심산으로 건국 이래 최초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시고, 임대차 3법을 강행하시어 헌법 제14조 거주이전의 자유를 박탈하셨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또 “집값이 11억원이 오른 곳도 허다하거늘, 어느 대신은 현 시세 11%가 올랐다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며 집값 상승률을 낮게 잡는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질타했다. 아울러 연일 부동산 정책에 대해 언급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본직이 법무부 장관인지 국토부 장관인지 아직도 감을 못 잡은 어느 대신”이라고 칭하며 “전월세 시세를 자신이 정하겠다며 여기저기 널뛰기를 하고 칼춤을 추어 미천한 백성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사온데”라고 비꼬았다.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청원인은 “일본과의 외교 마찰로 무역분쟁을 초래하였으나 이를 외교로 해결하지 않고 정치로 해결하시려 불매운동을 조장하고 양국관계를 파탄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의 패권주의와 북국 돈왕의 핵도발의 엄중함을 먼저 고려하시어 한미일 3국의 동맹을 강화하시며 안보의 기틀을 마련하시라”며 실리적 외교를 추구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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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글이 일부 공감을 사며 은폐 의혹이 일었으나 청와대는 이에 정면 반박했다. 100명 이상의 사전 동의를 받은 청원에 한해 공개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는 게시판에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설·비방·중복 등 부적절한 청원을 막기 위해 지난해 3월께 이 같은 장치를 마련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까지 국민청원에서 답하고 있다”면서 의도적인 은폐는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교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정부를 비난하거나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고 말하며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방역에 방해가 되는 ‘가짜뉴스’는 경계해야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비방은 표현의 자유라는 영역에서 허용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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