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맥헨리 요새




미영 전쟁이 한창이던 1814년 9월 영국군 함대가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공략을 위해 주요 방어기지인 맥헨리 요새에 포탄을 퍼부었다. 무려 25시간에 걸친 포격으로 요새는 큰 피해를 당했다. 당시 영국 함선에 억류됐던 미국인 변호사 프랜시스 스콧 키는 다음날 새벽 포화 속에도 성조기가 펄럭이는 광경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맥헨리 요새의 방어’라는 시를 써내려갔다. ‘오, 그대는 보이는가. 이른 새벽 여명 사이로/포탄의 붉은 섬광과 작렬하는 폭탄이/밤새 우리의 깃발이 휘날린 증거라.’ 그의 시는 훗날 미국 국가(國歌)인 ‘성조기’의 가사가 됐다.

프랑스인 장 퐁신은 1798년 볼티모어 항구를 방어하기 위한 맥헨리 요새를 오각형의 별 모양으로 설계했다. 요새 명칭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시절에 전쟁장관으로 건축을 책임졌던 제임스 맥헨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맥헨리 요새는 남북전쟁 당시 군사감옥으로 사용됐다. 당시 남군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정치인이 옥살이를 한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유럽 전장에서 후송된 부상병을 치료하는 병원시설로 쓰였다.


미국 정부는 맥헨리 요새를 줄곧 군사시설로 활용하다가 1912년 마지막 주둔군을 철수시키면서 민간에 개방했다. 192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 이어 1939년에는 ‘미국 국립 기념물 및 역사적 성지’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에는 전몰장병 추념식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5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메모리얼데이를 맞아 맥헨리 요새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볼티모어 시장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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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26일 대형 성조기가 펄럭이는 맥헨리 요새에서 공화당 부통령후보 수락연설을 했다. 주최 측은 보수 지지층의 애국심을 자극하려는 듯 이날 행사에 부상한 참전용사들을 대거 초청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면서 보수가치의 실현을 역설했다. 미국의 독립을 지켜낸 역사적 성지에서 치러진 공화당 출정식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돕는 계기가 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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