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경제제재에 들어가는 비용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美 우방국들에까지 무차별 제재

달러화 패권에 더많은 국가 반발

대체통화 찾으려는 시도 거세져

'힘의 남용' 후회하는 날 오게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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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숱한 국제협약에서 탈퇴했고 전례를 밥 먹듯 깨뜨렸으며,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우방국의 미움을 자초한 탓에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불만을 다스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확 달라진 미국의 외교적 접근법 중 슈퍼파워의 위상에 유난히 해가 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제재(sanction) 남발이다.

현재 미국은 개인·기업 및 국가를 상대로 8,000건 이상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0년간 제재라는 강력한 도구를 적잖이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연간 제재 건수는 앞선 두 전 대통령들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이란을 상대로 단 하루 사이 총 700건의 제재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광범위한 제재 조치가 잇달아 떨어지자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대표는 미국의 무차별한 제재로 현지 의료 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처했고 수백만명의 보통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위기라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휘두른 제재의 칼날은 적대국들만을 겨냥한 게 아니다. 이라크와 터키 같은 우방국 역시 말을 듣지 않으면 국가 경제를 파괴해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했다. 이달 초 ‘친트럼프’ 인사로 분류되는 공화당 상원의원 3명은 독일의 ‘노르드스트림 2 프로젝트’ 운영자에게 서한을 보내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가스관 연결공사를 그대로 진행하면 ‘참담한 법적·경제적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발끈한 독일의 중견 정치인들은 미국이 주권국가를 상대로 공공연한 ‘협박’을 하는 등 ‘신제국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미국이 외교정책의 도구로 제재를 유달리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경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 상대국의 정책 변화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재는 미군 주둔 약속이나 막대한 해외원조금 따위의 당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워싱턴은 어려운 선택이나 희생을 피해가며 상대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은 “요즘 젊은이들의 구애 방식과 마찬가지로 제재는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고도 만족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혹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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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치하의 미국은 크게 향상된 미국 금융 시스템의 힘을 십분 활용해 제재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점차 늘어나는 글로벌 경제의 상호연결성으로 단일 구축통화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달러가 이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결과 제재 대상국과 거래하는 개인이나 기업 혹은 국가에 미국이 ‘2차 제재’를 가하면 1차 제재 대상국의 국제거래 접근에 심각한 지장을 주게 된다. 이처럼 이란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미국이 다시 제재하면 이란은 국제경제와 단절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제재의 속성 탓에 워싱턴은 이를 사용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워싱턴이 제재 조치를 남발할수록 달러화 패권에 맞서 대체통화를 찾으려는 시도 역시 거세지기 마련이다. 제재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미국의 태도는 우방국들에서조차 강한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달러화 통제를 우회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제재에 분노한 유럽 국가들 역시 대체통화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옵션’이라는 이유로 벨기에에 본부를 둔 국제은행간통신협정(SWIFT) 시스템의 국유화를 꺼렸다. SWIFT는 각국 주요 은행을 묶어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은행 상호지급·송금업무 등을 위한 데이터 통신을 교환하는 비영리기구다. 유럽 국가들은 SWIFT를 대체할 INSTEX를 이미 구축했지만 이에 대한 공개적이고도 전폭적인 지지를 꺼리고 있다.

트럼프가 전략적 목적이 아니라 단지 강하게 보일 요량으로 제재를 곤봉처럼 함부로 휘두를수록 더 많은 국가가 미국에 반발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제재 비용이다.

달러화의 힘은 미국이 지닌 최대 장점 가운데 하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도전에 직면한 지금 달러화의 막강한 힘은 미국에 큰 이점을 안겨준다. 초인플레이션이나 환율 절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이 같은 특전이 사라지면 미국은 영구적인 타격을 받게 되고 우리는 이렇듯 귀중한 자산을 남용했다는 자괴감에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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