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이제껏 ‘확대·성장’ 위주였던 국내 금융사들의 글로벌 전략에도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 새로운 시장 개척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우선순위가 놓였고 언택트 시대에 발맞춘 디지털 뱅킹 강화에도 방점이 찍혔다. 저금리와 각종 규제·성장둔화 등으로 한계에 부딪힌 국내 시장 대신 해외에서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도 마다 않던 거대 금융지주가 손을 잡으며 글로벌 협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하반기 국내 주요 은행은 대부분 올해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 및 자산성장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는데다 올 초부터 각국이 시행한 출입국 제한 조치가 지속되면서 국가 간 이동도 여의치 않아 실질적인 사업 추진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불가피한 것도 장애 요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현지 기업의 매출과 실적 악화에 따라 동반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목표를 하향하고 외화유동성·자산건전성 등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느 기업이나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는 국내 금융사들의 글로벌 전략 키워드의 최우선 순위는 ‘디지털’이다. 직접적인 현지 지점·점포 확대 대신 디지털 뱅킹 강화와 현지 디지털 플랫폼사 제휴를 통해 비대면 해외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올 하반기 자체 모바일 뱅킹 플랫폼인 ‘글로벌 쏠(SOL)’을 출시·업그레이드하는 것은 물론 현지 플랫폼사와 다각적인 제휴를 통해 이미 진출한 국가별로 적합한 디지털 전략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미 베트남에서는 현지의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잘로’와 손잡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신용카드·신용대출 영업에 나섰고 캄보디아에서도 모빌리티 업체 ‘MVL’과 함께 전자지갑 서비스를 내놓았다.
하나은행 중국법인 역시 ‘알리바바’에 이어 최근 세계 2위 온라인 여행 플랫폼 ‘씨트립’과 제휴해 모바일 대출을 출시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현지 제휴업체를 더 늘려갈 것”이라며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21개국에서 운용하고 있는 인터넷·스마트폰뱅킹채널을 강화하고 비대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업무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올 상반기 베트남에서 자체 모바일 뱅킹 플랫폼인 ‘우리WON뱅킹 베트남’을 출시한 데 이어 방글라데시·인도·미국·영국 등 세계 8개국에서 동시에 ‘글로벌WON뱅킹’을 출시했다.
이전보다 인력 교류가 어려워진 만큼 국내 모회사 대신 현지 중심의 경영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코로나19가 가져온 전략 변화다. 신한은행은 올 상반기 베트남·캄보디아·미얀마 3개국을 대상으로 ‘인도차이나 지역헤드’ 제도를 새로 도입해 현지 중심 경영체계를 구축했다. 또 각종 연수·출장 등도 제한을 받는 만큼 현지직원을 대상으로 각종 비대면 교육을 신설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도 지역헤드 제도를 확대 적용하고 현지직원 역량 강화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