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를 이번주에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을 둘러싼 경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삼성은 검찰의 장기간 수사에 따른 사법 리스크 외에도 보험업법·상법 개정 등 입법 리스크,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견제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무시하고 이 부회장 기소를 강행할 경우 삼성의 위기경영이 올스톱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이 결정할 수 있지만 위기극복과 신사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 및 인수합병(M&A)은 총수인 이 부회장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TSMC·엔비디아 공격적 투자
31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최근 공격적인 투자 및 M&A에 나서며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위기 국면을 기회 삼아 과감한 선제 투자로 경쟁 업체들을 따돌리려는 전략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는 지난주 2나노미터(㎚·10억분의1m) 반도체 공정 개발과 생산을 공식화했다. TSMC는 약 22조원을 투자해 오는 2024년부터 2나노 제품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로써 TSMC는 삼성전자와의 반도체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TSMC 모두 2022년께 3나노 제품 양산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삼성전자는 아직 2나노 로드맵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나노 수가 작을수록 반도체의 성능과 전력효율이 높아져 경쟁에서 뒤진 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가 10조원을 들여 내년 하반기부터 평택사업장에 극자외선(EUV) 파운드리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지만 이 라인은 5나노 및 4나노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2나노 제품 양산을 위해서는 추가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안팎으로 공격을 받는 가운데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시장조사 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4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7.4%로 전 분기 대비 1.4%포인트 낮아지는 반면 TSMC의 점유율은 53.9%로 2.5%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미중 반도체 전쟁 와중에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내는 중국 업체들의 추격도 따돌려야 하는 처지다.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최근 상하이 증시 상장을 통해 약 9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았고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에 10년간 법인세 면제라는 당근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에서 인텔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은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가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점도 삼성전자에 위협이 될 수 있다. ARM 인수 규모는 최대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를 ARM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삼성전자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소 밀어붙인다면 투자·M&A 차질
특히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를 밀어붙인다면 삼성전자의 대규모 M&A는 상당 기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11월 역대 최대인 9조원을 들여 미국 전장 업체 하만을 인수한 뒤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며 수조원 단위의 대형 M&A가 중단된 상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기소로 이 부회장의 새 재판이 시작될 경우 앞으로 최장 5년간 재판이 이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이 부회장과 삼성 경영진이 재판 출석 및 준비에 몰두해야 해 투자 및 M&A 결정이 지연되는 등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검찰의 무리한 삼성 수사를 지적하며 불기소 결정을 통해 삼성의 경영을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병태 KAIST 경영학 교수는 “검찰은 대규모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통해 혐의가 나올 때까지 기업을 털어 범죄로 엮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더구나 검찰이 자체 개혁안으로 내놓은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까지 뒤집고 이 부회장을 기소할 경우 법치의 심각한 훼손이자 권력남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 교수는 “검찰이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압도적 결정으로 불기소를 권고한 수사심의위를 설득하지도 못할 상황이라면 장기간 수사를 벌였더라도 삼성 수사를 그만 접는 게 맞다”며 “기소를 강행하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긴 시간 동안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이수민기자 jy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