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삼재' 든 삼성…위기 돌파할 '초격차' 시동도 못거나

승계 의혹 수사 결론 안나 투자 차질

보험업법 상법 개정도 경영 짓눌러

해외 경쟁업체 공세 겹쳐…악전고투




코로나 극복도 버거운데…삼성 옥죄는 '트리플 리스크'


이재용(앞줄 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중국 산시성 시안 반도체사업장을 찾아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앞줄 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중국 산시성 시안 반도체사업장을 찾아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을 둘러싼 ‘트리플 리스크’가 불거지며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매진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사법·입법 리스크가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타도 삼성’을 외치는 해외 업체들의 공격적인 행보가 이어지며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위기 때마다 압도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 업체를 따돌려온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이 다시 한번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사법·입법 리스크 해소가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아직 기소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검찰이 관련 수사를 시작한 지 1년 8개월이 지났고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 불기소 및 수사 중단을 권고한 지도 두 달이 넘었다. 삼성을 옥죄는 사법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에는 공격적인 투자가 차질을 빚고 대규모 인수합병 작업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보험업법과 상법 개정 등 입법 리스크도 삼성을 짓누르는 요인이다. 특히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현실화할 경우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처분해야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지분은 약 20조원 이상으로 매각 차익에 따른 법인세만도 5조원에 달한다. 이 경우 삼성의 지배구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을 노리는 외부 투기자본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0115A01 삼성트리플리스크


삼성이 국내에서 사법·입법 리스크에 발목을 잡힌 사이 삼성의 경쟁자들은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에 나서며 시장의 판을 바꾸려 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22조원을 들여 삼성전자에 앞서 2나노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 영국 ARM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 교수는 “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를 권고했고 이후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검찰이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기소를 한다면 과잉 기소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며 “이 부회장 기소는 우리 경제 전체의 리스크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타도' 외치는 TSMC·엔비디아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를 이번주에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을 둘러싼 경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삼성은 검찰의 장기간 수사에 따른 사법 리스크 외에도 보험업법·상법 개정 등 입법 리스크,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견제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무시하고 이 부회장 기소를 강행할 경우 삼성의 위기경영이 올스톱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이 결정할 수 있지만 위기극복과 신사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 및 인수합병(M&A)은 총수인 이 부회장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0115A03 지각변동 시작된 글로벌 반도체 업계


31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최근 공격적인 투자 및 인수합병(M&A)에 나서며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위기 국면을 기회 삼아 과감한 선제 투자로 경쟁 업체들을 따돌리려는 전략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는 지난주 2나노미터(㎚·10억분의1m) 반도체 공정 개발과 생산을 공식화했다. TSMC는 약 22조원을 투자해 오는 2024년부터 2나노 제품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로써 TSMC는 삼성전자와의 반도체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TSMC 모두 2022년께 3나노 제품 양산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삼성전자는 아직 2나노 로드맵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나노 수가 작을수록 반도체의 성능과 전력효율이 높아져 경쟁에서 뒤진 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가 10조원을 들여 내년 하반기부터 평택사업장에 극자외선(EUV) 파운드리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지만 이 라인은 5나노 및 4나노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2나노 제품 양산을 위해서는 추가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월 온양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패키징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월 온양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패키징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안팎으로 공격을 받는 가운데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시장조사 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4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7.4%로 전 분기 대비 1.4%포인트 낮아지는 반면 TSMC의 점유율은 53.9%로 2.5%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미중 반도체 전쟁 와중에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내는 중국 업체들의 추격도 따돌려야 하는 처지다.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최근 상하이 증시 상장을 통해 약 9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았고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에 10년간 법인세 면제라는 당근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에서 인텔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은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가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점도 삼성전자에 위협이 될 수 있다. ARM 인수 규모는 최대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를 ARM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삼성전자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검찰·국회에 이중족쇄
특히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를 밀어붙인다면 삼성전자의 대규모 M&A는 상당 기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11월 역대 최대인 9조원을 들여 미국 전장 업체 하만을 인수한 뒤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며 수조원 단위의 대형 M&A가 중단된 상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기소로 이 부회장의 새 재판이 시작될 경우 앞으로 최장 5년간 재판이 이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이 부회장과 삼성 경영진이 재판 출석 및 준비에 몰두해야 해 투자 및 M&A 결정이 지연되는 등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검찰의 무리한 삼성 수사를 지적하며 불기소 결정을 통해 삼성의 경영을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용(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중국 산시성 시안 반도체사업장을 찾아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중국 산시성 시안 반도체사업장을 찾아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이병태 KAIST 경영학 교수는 “검찰은 대규모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통해 혐의가 나올 때까지 기업을 털어 범죄로 엮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더구나 검찰이 자체 개혁안으로 내놓은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까지 뒤집고 이 부회장을 기소할 경우 법치의 심각한 훼손이자 권력남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 교수는 “검찰이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압도적 결정으로 불기소를 권고한 수사심의위를 설득하지도 못할 상황이라면 장기간 수사를 벌였더라도 삼성 수사를 그만 접는 게 맞다”며 “기소를 강행하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긴 시간 동안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 전자 지분 23조 팔아야…법인세만 5조 달해
여당도 삼성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20조원 이상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압박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대기하고 있다.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수 있지만 정작 삼성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손발 묶어놓고 때리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의원과 이용우 의원이 지난 6월 각각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되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자회사 발행 채권 및 주식 소유의 합계액이 총자산의 3%를 넘을 수 없다는 ‘3% 룰’의 계산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장가격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개정안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지분은 약 20조원 이상으로 매각 차익에 따른 법인세만도 4조~5조원에 이른다. 특정 기업에 대한 과도한 세금 물리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해당 물량을 매각할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우호지분도 낮아질 수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에서 삼성생명으로, 그리고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이 부회장은 현재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5.01%)과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8.51%)을 활용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0115A03 삼성그룹 지배구조


이 때문에 삼성그룹은 해당 매각 물량을 어떻게든 그룹 내부에서 해소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동반되는 시나리오들이 모두 불가능에 가까워 뾰족한 수가 없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삼성물산이 나서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과 스와프(교환)하는 방법이다. 현재 시가총액 54조원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보유 지분(43.44%)을 모두 매각할 경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도 재계에서는 ‘원천 불가’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될 경우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이미 5%를 가진 상황에서 15%에 가까운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야 하는데 이는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지분의 2배에 가깝다. 현금흐름이 좋지 않은 삼성물산이 수십조원에 이르는 지분 매입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이밖에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하고 투자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시키는 방안 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장기적인 지배구조 개편 아이디어로 당장 현실화될 가능성을 점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현금자산 100조원 이상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사들인 뒤 소각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하지만 현행법상 상장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려면 거래소나 공개매수를 통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주주로부터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게 하는 ‘삼성생명 퇴로법’ 발의도 함께 필요하다. 박 의원이 20대 국회 때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21대 국회에서는 발의되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가 수십 년간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시가 상승을 이유로 강제 매각시키는 것은 시장질서를 무너뜨리는 과잉조치”라며 “19대와 20대 국회 때도 예상되는 부작용이 커 통과되지 못한 만큼 신중한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련 "상법·공정법 통과땐 일자리 23만개 사라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도입을 보다 신중하게 검토하고 경제계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달라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고 31일 밝혔다. 전경련은 정부 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경영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 신설, 감사위원 분리선임, 3% 의결권 제한 규정 개편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포함돼 있다. 전경련은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될 경우 자회사는 출자도 하지 않은 모회사의 주주 때문에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장사의 소송 리스크는 3.9배 상승하며 자회사 주주의 권리침해 소지도 있다는 것이 전경련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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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3% 의결권 제한 규정을 도입할 경우 최대주주의 의결권 제한을 무기로 헤지펀드들이 마음대로 감사위원을 선임해 경영권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 비용만도 30조1,000억원이 발생하고 일자리 손실이 23만8,000명에 이를 것으로 봤다. 대기업집단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거나 기존 지주사가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신규 편입할 경우 지금보다 많은 지분을 취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확대되면 경영상 필요에 따라 수직계열화한 계열사 간 거래가 위축돼 기업 경영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변수연·이수민·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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