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자친구 명의로 사채를 쓰고 있던 20대 남성 A씨. 어느 날 여자친구 B씨는 ‘더 이상 사채로 대출받을 수 없다’고 A씨에게 통보했다.
그러자 A씨는 B씨에게 보이스피싱 조직원과 접촉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알려줬다. 그러면서 “현금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 수수료를 받는 일”이라며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일을 할 것을 B씨에게 제안했다. 현금 수거책은 피해자들이 인출한 돈을 직접 수거하는 역할을 한다.
A씨는 “범행을 지시하는 사람(보이스피싱 총책)이 더 나쁜 사람이니 우리가 돈을 가지고 가도 된다. (우리를)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고 B씨를 안심시키며 피해자에게서 돈을 받자마자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A씨의 제안으로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게 된 B씨는 현금 수거책뿐만 아니라 ‘가짜 금융위원회 직원’ 행세도 하게 됐다.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전화 통화로 검사 행세를 하며 피해자와의 만남을 유도하면, B씨가 피해자를 만나 위조된 ‘금융범죄 금융 계좌 추적 민원’ 서류를 주고 현금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B씨가 이렇게 피해자들로부터 빼돌린 돈은 1,500만원이었다. B씨는 이 중 1,100만원을 남자친구 A씨에게 건네줬다.
이뿐 아니라 A씨는 B씨와 함께 상품권 대리 구매 아르바이트를 통해 횡령을 저질렀다. B씨의 계좌로 상품권 구매대금 300만원이 들어오자 두 사람은 이 중 160만원가량을 인출하는 방식으로 횡령했다. 이들은 생활비 마련, 채무 변제 등을 목적으로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사기를 쳐 약 140만원을 편취하기도 했다.
이후 사기교사,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 측은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의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가 맡았다,
A씨 측은 B씨에게 사기를 저지를 것을 교사하거나 B씨와 공모해 횡령, 사기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B씨가 자신의 형사책임을 줄이기 위해 A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그러나 법원은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 부장판사는 “B씨가 다섯 번째 경찰 조사 때부터 일관되게 A씨가 자신에게 보이스피싱 범행을 하도록 교사하거나 횡령, 사기 범행을 한 당시 A씨의 역할 등에 대해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며 “결국 A씨가 B씨에게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을 저지르도록 교사하고, B씨와 공모해 횡령과 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지난달 27일 A씨에게는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오 부장판사는 “A씨는 실형 선고를 받은 전력이 있고, 누범 기간 중에 재범한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높다”며 “B씨와 공모한 범행을 주도적으로 저질렀음에도 모든 책임을 B씨에게 전가하고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개전(행실·태도의 잘못을 뉘우침)의 정상도 엿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