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초저금리에 영끌·빚투 열풍...신용대출 한달새 4조원 급증

8월간 5대은행 신용대출 4조원 늘어

'영끌' '빚투'에 코로나 생계자금도

초저금리에 '일단 받고 보자' 행렬

지난달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 신용대출이 한 달 만에 4조원 넘게 급증했다. 유례 없는 증가세다. 초저금리에 잇단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로 부족한 주택 매매자금을 신용대출로 충당하는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 성행한데다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빚내서 투자)’ 광풍이 이어진 결과로 보인다. 폭증세를 보이는 신용대출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 조짐을 보이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일단 받고 보자’는 움직임도 빨라졌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재확산과 이에 따른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자금 사정이 나빠진 가계와 영세 자영업자의 급전 수요도 다시 늘면서 신용대출은 예년보다 2~3배 빠른 속도로 급증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의 모습. /연합뉴스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의 모습. /연합뉴스



2일 은행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가계 신용대출 잔액은 124조2,747억원으로 전달보다 4조704억원 늘었다. 올 6월(2조8,374억원)에 이어 두 달 만에 사상 최대 증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들 은행의 월간 신용대출 증가액이 4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19의 국내 확산이 본격화한 3월 이후 가계 신용대출은 매달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왔다. 5대 은행의 전달 대비 신용대출 증가액은 올 3월 2조2,409억원을 기록하며 1년 반여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뒤 6~7월 연속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1년 전과 비교한 증가율도 3월(12.8%) 이후 매달 두자릿수를 찍으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증가율이 18%까지 올라 지난해 평균 증가율(6.4%)의 3배로 뛰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이 6~7%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이례적인 급증세가 이어지는 와중에 지난달 또 한 달 만에 신용대출이 4조원 늘어난 데에는 부동산 규제 강화 및 저금리와 맞물려 ‘영끌’해서라도 집을 사려는 ‘패닉 바잉(공황 구매)’ 현상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나날이 치솟는 집값에 불안감을 느끼고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정부의 부동산대출 규제에 막힌 주택담보대출 대신 상대적으로 느슨한 신용대출을 끌어다썼다는 분석이다.


달아오른 주택 시장의 열기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로도 나타났다. 8월 말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80조8,307억원으로 전달보다 4조874억원 늘었다. 올 4월(4조5,526억원) 이후 3개월 만의 최대 증가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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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신용대출 금리가 이례적으로 낮아진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8월 말 기준 주요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1.75~3.6% 수준이다. 연 2~4%대인 주담대 금리보다도 낮다. 예금 금리가 1% 안팎으로 떨어진 마당에 싼 금리로 돈을 빌려 주식 강세장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 이날까지 이틀간 진행 된 카카오게임즈 청약 증거금으로 몰린 90조원에 가까운 자금 중에도 신용대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청약 첫날이었던 1일 하루 동안에만 1조8,034억원 불어났다. 8월 한 달 증가액의 절반에 이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일단 받아놓고 보자는 식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거나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빚투에도 적잖게 흘러갈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중순 과도한 신용대출 증가세에 구두경고를 날린 것도 ‘막차’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수도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강화된 2단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1일 서울의 한 커피전문점에 ‘힘듭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연합뉴스최근 수도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강화된 2단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1일 서울의 한 커피전문점에 ‘힘듭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연합뉴스


급격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타격을 받은 가계와 영세 자영업자의 생계자금 용도 대출도 무시할 수 없다. 실업이나 휴직, 단축영업 등으로 소득이 끊기거나 줄면서 은행 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중소기업·개인사업자 대출도 다시 가파르게 늘었다. 8월 말 5대 은행의 중소기업(개인사업자 포함) 대출 잔액은 482조1,910억원으로 전달보다 4조6,801억원 늘었다. 지난 6~7월 3조원 안팎으로 줄었다가 지난달 다시 크게 증가했다.

신용대출 폭증세가 이어지면서 앞으로 신용대출 문턱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이미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주식·주택 매매에 활용된 신용대출은 향후 시장 불안 시 금융회사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금융회사 차원에서도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금융당국도 이에 대한 점검을 철저히 하고 신용·전세대출 등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전반에 대해 중점 모니터링을 할 것”이라고 구두경고를 한 상태다.

다만 정부로서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축을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힌 만큼 당장 대출을 죄기는 쉽지 않다. 적극적인 경기 대응을 위해서는 부채비율 증가도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 내 지배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금융지원 기조에 부응해야 하는 은행들로서도 당장 대출 문턱을 높이는 데에는 신중한 분위기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신용대출이 주택 매매에 유용되지 않도록 각종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은행들이 그 이상으로 자금 용처를 점검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생계자금으로 신용대출을 끌어쓰는 경우도 많은 만큼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되 급격히 대출을 죄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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