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8일, 일본의 투자회사 미즈호 증권이 도쿄 증권거래소에 제이콤의 주식 1주를 61만엔에 매도한다는 주문을 냈다. 하지만 미즈호 직원의 실수로 그만 61만주를 1엔에 팔고 말았다. 당황한 직원이 주문을 취소하려 했으나 거래소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미즈호 증권은 최소 270억엔(약 3,000억원)의 손실이 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시장에서도 여파는 컸다. 도쿄증권거래소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고 닛케이지수는 1.95% 하락했다. 이처럼 순간의 수학적인 실수는 때로 심각한 파장을 일으키곤 한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 입력된 숫자 하나로 건물이나 다리가 무너지거나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신간 ‘험블 파이’는 인류 역사 속 어처구니없는 수학 실수들과 그로 인해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을 다룬 책이다. 험블파이(Humble Pi)라는 제목은 영국에서 쓰이는 표현인 ‘잇 험블 파이’(eat humble pie)에서 나온 것으로, 잘못을 시인해야 하거나 체면을 구긴 굴욕적인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책에는 맥주 양조용 보리를 거래한 기록에 남겨진 인류 최초의 계산 실수부터 시작해 NASA의 화성 탐사선 발사 프로젝트 실패 등 세기의 수학 실수들이 담겨 있다. 저자인 호주 수학교수 출신으로 현재는 수학 스탠딩 코미디를 공연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2008년부터 크루를 결성해 지금까지 전 세계 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수학 공연을 펼쳤고, 매년 11월에는 대규모 수학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이 책이 단순히 역사 속 수학 실수의 에피소드만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수학을 어떻게 대하면 좋은지, 수학이 우리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생각해보게끔 독자들을 이끌어 준다. 온갖 수학 실수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수학이란 이론을 이해하고 계산을 바르게 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고, 의심하고, 확인할 수 있는 방편을 찾아가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책 ‘수학이 필요한 순간’의 저자 김민형 교수는 “매트 파커는 아주 특이하게 코미디를 통해서 수학을 가르친다. 그의 유머수학은 긴장감이 필요한 마음 자세와 즐겁고 유연한 사고의 유희 사이에 절묘한 평형점을 찾아준다”고 평했다.
이 책은 영미권에서 최초로 종합 베스트셀러 1위가 된 수학책이기도 하다. 출간 당시 영국에서 1위를 기록 중이던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을 누르고 수학 교양서로는 최초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더욱 화제가 됐다.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