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그 ‘흥부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다. 신간 ‘흥보만보록’은 2017년 발견된 흥부전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1833년 추정)을 현대어로 옮긴 책이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고운 흥보는 다친 제비를 치료해줘 박씨 선물로 받아 부자가 되고, 나쁜 마음으로 이를 따라 한 형 놀보는 벌을 받는다는 줄거리는 같다. 그러나 흥보만보록 속 흥보와 놀보의 경제력 차이는 부모님의 유산을 독차지한 못된 형님 탓이 아닌 가난한 부모 탓으로 그려진다. 이들의 부모는 두 아들을 부잣집에 장가보냈지만, 하루 29공기의 밥을 먹는 ‘괴력의 먹성’ 탓에 가난에 내몰린다. 이를 외면한 놀보와 달리, 인정 많은 흥보는 처가살이를 관두고 친부모를 부양하느라 형편이 어려워진다. 흥부전의 배경은 남도가 아닌 평양으로 나오고, 조선 시대의 가부장적 문화와 달리 흥보 형제가 데릴사위로 처가의 덕을 본다는 설정, 흥보가 무과에 급제한 무반이 되어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다는 내용이 새롭다.
특히 지금껏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캐릭터로 알려졌던 놀부가 나름 합리성을 갖춘 캐릭터로 등장하는 점이 주목된다. 놀보는 자신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흥보에게 말한다.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며 아침저녁 밥이 끊이지 않는 것은 부모님이 준 것도, 동생 네가 주어서 생긴 것도 아니다. 처(妻)부모님 덕분에 은혜를 입어 풍족하게 두고 먹는데, 부모님은 무슨 낯으로 내 것을 달라 하며 너는 무슨 염치로 나를 보채느냐.” 불효막심한 발언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틀린 말도 아니다. 효 사상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는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 손가락질받았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맞는 말’이라고 평가할 이가 적지 않을 듯싶다. 더군다나 놀보가 나쁜 짓으로 부를 쌓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처럼 흥보만보록은 놀부에게 심한 악인의 이미지를 씌우고 흥부에게선 무기력한 양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던 익숙한 ‘흥부전’과는 사뭇 다른 전개로 눈길을 끈다. 124페이지의 얇은 책 안엔 흥보만보록 원본과 현대어 버전, 그리고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이 담겨있다. ‘가산이 기울 만큼 많이 먹었던 흥보 부모’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 시대 사람들의 식성을 알아보고, 놀보가 박에서 나온 상전에게 바치는 공물 목록을 바탕으로 당시 인기 있던 식재료도 들여다본다. 시대에 따라 그 교훈과 인물 분석이 달라지는 게 고전의 매력이다. 그 고전의 ‘조금 다른 버전’을 읽는 재미는 더욱 쏠쏠하다. 1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