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탈권위 시대, 세상은 왜 더 나빠졌을까

[책꽂이-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반비 펴냄

공동체 근간 이루는 권위의 부재로

교권 추락 등 각종 사회문제 발생

집단 구성원 상호간 통제하는

'수평적 권위' 새 모델로 제시




학생이 교사를 괴롭히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교사의 훈육에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아예 지도를 포기하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교권 추락은 비단 우리 사회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책 ‘공포 정치’로 유명한 영국의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는 2008년 한 연구를 인용해 영국 내 교사 절반이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심지어 신체적 폭력까지 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교사의 권위, 어른의 권위가 무너진 오늘날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신간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씁쓸한 현상의 원인을 ‘권위’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육아와 교육,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의 배경에 공통적으로 ‘권위의 부재’라는 원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Authority)는 ‘권위주의’나 ‘권력(Power)’과는 다른 개념이다. 임상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책에서 “권위란 도덕 그 자체로, 사회가 구성원들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규범과 가치에서 탄생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책은 권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주요한 기능으로 ‘인간관계 규제’를 꼽는다. 사람은 부모, 자녀, 또래, 동료, 이성 등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권위는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개인적, 심리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권위가 사라지면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기본적인 문제들과 다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유대인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권위란 인간관계를 규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권위 없이는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저자는 상실된 권위가 육아, 교육, 정치의 실패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각종 육아·교육 지원제도를 도입하고 기술이 발달해도 부모와 교사들의 번아웃은 해소되지 않고, 과잉행동이나 품행 장애를 진단받는 소아·청소년들과 학생들로부터 괴롭힘과 폭력을 당하는 교사의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포퓰리즘 정치가 일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경제가 성장을 해도 복지가 좋아지기는커녕 교육과 돌봄 서비스의 비용은 갈수록 오르는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을 약속하는 탈권위시대를 살고 있지만, 육아, 교육, 정치는 점점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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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실패와 부재에 따른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너진 권위 때문에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하지 못하면 신뢰 관계가 약해지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규칙과 통제, 강압적 조치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교사의 훈계만으로 교내 폭력을 단속할 수 없게 되자 보다 엄정한 처벌을 위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설치되고, 투명성을 취지로 하는 학폭위마저 잘 운영되지 않자 학폭위 전문 보험이나 변호사까지 등장한다. 이렇게 강화되는 사회적 통제의 압박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소외감으로 이어지고, 사람들을 수치심과 우울감으로 내몬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을 우울증의 시대로 만드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책은 진단한다.

책은 우리가 권위 자체를 부정할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양극화 심화, 기후위기 등의 정치·경제적 위기 앞에서 포퓰리즘이나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제)와 같은 피라미드형 순수 권력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할 위험이 커진다고 경고한다. 권위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난 규칙들은 권력과 강요된 복종에 의해서만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저항과 반발을 일으키고, 또다시 더 많은 규칙을 불러내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탈권위와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분위기 속에 부모부터 교사, 직장 상사, 정치인들이 ‘꼰대’로 비춰질까 두려워 권위자가 되기를 아예 거부하는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한다.

책은 이전과는 다른 원천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수평적인 집단에 근거한 수평적 권위이자, 집단 구성원 상호 간의 사회적 통제에 의해 작동하는 권위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당사자들이 믿고 자발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권위가 확립되어야 한다. 다수의 인정 하에 주어진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힘 말이다.

저자는 “권위 모델의 변화는 공유경제 또는 숙의 민주주의 등 우리 사회를 작동하는 시스템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부모상, 교사상, 경영자상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곧 내가 어떤 시민 이자 어른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에 속해 살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과도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1만8,000원.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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