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최연소 나이로 ‘K팝스타’ 우승을 차지했던 박지민이 어느덧 9년 차 가수가 됐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정든 울타리를 벗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용하던 영어 이름으로 활동명도 바꿨다. 앳된 외모는 이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과감하게 체중 감량도 하고, 스타일 변신도 했다. 박지민의 또 다른 모습, 제이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제이미는 3일 소속사 이적 후 첫 디지털 싱글 ‘넘버스(Numbers)’를 발표한다. 전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에서 발표했던 싱글 ‘스테이 뷰티풀(Stay Beautiful)’ 이후 1년 만의 컴백이기도 하다. ‘넘버스’는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 숫자들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주제로, 제이미가 평소 좋아하는 힙합 베이스의 리듬에 청량한 피아노 사운드를 결합했다. 그는 제이미로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공식적인 앨범인 만큼 주도적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곡에 담긴 메시지에 많이 주목해 주셨으면 해요. 제이미로서 처음으로 활동하는 곡이고 앞으로 제가 하는 음악에 있어서 첫걸음이잖아요. 그래서 음악에서부터 가사, 음정, 멜로디, 피처링, 뮤직비디오, 의상, 헤어, 메이크업까지 정말 모든 부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신경 썼어요. 제이미로서 최대한 많은 모습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호소력 짙은 보컬이 특징인 제이미는 JYP에서 박지민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R&B 소울, 발라드 장르의 곡을 선보였다. 이와 반면 제이미의 음악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첫 앨범에서는 그동안 많이 해보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좀 더 힙하고 유쾌 발랄한 분위기의 곡을 선택했다. 거기에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가사에 한껏 녹여냈다.
“노래를 듣자마자 ‘이거다!’ 했던 것 같아요. 그간 신나는 곡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많이 없었는데, 하고 싶었던 통통 튀는 음악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설레었죠. 또 여름과 너무 잘 어울리는 곡이기도 해서 컴백 곡으로 선택하게 됐어요.”
“예전부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에 적곤 했는데, ‘넘버스’는 숫자로 본인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을 저만의 스타일로 재미있게 꼬집은 곡이에요. 물론 진짜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얻고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서 멈추게 하는 일들도 많잖아요. 예를 들어 성적, 조회 수, 순위, 그 사람을 자칭하는 팔로워 수 등 수많은 숫자들이 있는데 그것들로 인해 나라는 사람의 색깔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서 ‘너는 숫자로 매길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해주고자 곡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제이미가 ‘K팝스타’ 이후 오랫동안 몸담았던 JYP를 떠나고 이름부터 외모, 음악 스타일까지 바꾼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9년 차가 된 지금 새롭고 과감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 변화를 시도했지만, 박지민으로 쌓아왔던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제이미는 새롭게 시작되는 미래에 걱정보다는 재미가 앞선다.
“제가 그려왔던 저의 모습 중에 한 면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요. 박지민으로 알고 있던 분들이 제이미라고 이름을 바꾼 것을 많이 알아주실지 항상 고민이었는데요. 또 막상 ‘제이미라는 사람 처음 보네. 언제 데뷔했음?’ 이런 댓글을 봐도 기분은 나쁘지 않더라고요. 제이미를 다른 인격체로 생각해 주시는 것도 되게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인 것 같아요. 바로 알아보실 줄 알았는데 진짜 못 알아보시는 분들도 되게 많고, 저인 걸 알고 ‘아 보인다!’ 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도 계셔서 되게 재미있어요.”
제이미가 변화 후 처음으로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비춘 건 앨범 활동이 아닌 Mnet 힙합 리얼리티 ‘GOOD GIRL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이하 ‘굿걸’)이었다. 제이미가 뛰어난 보컬리스트인 것을 익히 아는 대중은 많았지만, 그가 랩과 보컬을 넘나들며 수준급으로 힙합 스타일을 소화하는 가수인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정작 제이미는 예전부터 힙합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원래 팝 R&B, 힙합을 좋아했었어요. 그중에서 R&B쪽을 조금 더 좋아했는데, 힙합적인 부분을 많이 보여드리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부분을 매력으로 느꼈어요. 멜로디로 표현을 하는 것보다 나의 속내를 더 시원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고, 그런 표현을 했을 때 다들 즐겁게 들어주시는 것 같았어요.”
“‘굿걸’은 지금 회사를 들어가기 전에 출연 제의가 먼저 왔었어요. 너무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제이미로서의 활동을 꼭 음원으로만 얘기하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출연을 결정하게 됐었죠. ‘굿걸’에 출연하면서 ‘이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서 행복해 보인다’, ‘박지민 닮았다’라는 댓글이 되게 기억에 남아요. 웃기더라고요.”
제이미의 새로운 출발에 그를 JYP로 이끌어 준 스승 박진영 또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JYP와 계약 종료 직전 “빨리 방향을 못 잡아줘서 미안하다”고 했다는 박진영은 지금도 제이미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제이미는 최근 박진영과 만나 ‘넘버스’를 미리 들려주고 칭찬을 받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신곡 발표 전에 박진영 PD님과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음악을 들려드렸는데 정말 좋아해 주셨어요. PD님께서 ‘넘버스’를 처음 듣고 여태까지 들었던 저의 보컬적인 부분에서 톱이라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K팝스타’ 이후로 그렇게 칭찬을 해주신 적이 없으셔 가지고 뭔가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느낌이에요. PD님 칭찬을 받기가 엄청 어려운데 계속 ‘넘버스’ 좋다고, 나오면 얘기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보컬적으로 많이 섬세해지고, 신경 안 쓴 듯 쓴 듯한 게 너무 멋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무슨 척하려는 거 같지 않고 딱 저의 모습인 것 같다’ 라고도 해주셨는데 그 말이 저에게는 의미가 커요. ‘K팝스타’ 때부터 조금 저의 발목을 잡았던 박진영 PD님의 코멘트 중 하나가 ‘네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노래를 하려고 한다’였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이 저한테는 항상 큰 숙제였는데, 그 숙제를 조금은 해결을 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 큰 힘이 됐어요.”
제이미로서 첫 발걸음에 자신감을 충전한 그의 목표는 오랫동안 음악을 하는 것이다.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발전하는 가수, 다양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가수가 되는 것이 제이미의 방향성이다. 또 두아 리파, 카디 비, 에드 시런 등 세계적인 팝 스타들인 소속된 워너뮤직코리아에서 새 둥지를 튼 만큼 해외 시장도 노려볼 만하다.
“지금은 제이미라는 이름을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진짜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넘버스’로 제이미를 알게 되면서 제이미라는 가수가 이 곡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본인의 음악을 하는 것 같아서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글로벌 활동을 위해서 워너뮤직코리아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분들도 많고 커뮤니케이션 쪽으로 확실히 많이 열려 있거든요. 해외 활동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회사이기도 한 만큼 저에게는 큰 혜택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국내와 해외 활동 모두 신경 쓸 예정이에요. 그만큼 제가 틈틈이 실력을 더 쌓아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아티스트가 돼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는 카디 비랑 같이 음악을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봐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아티스트다 보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