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후지와라 효과




1994년 여름은 기상 관측 사상 최고로 더웠다. 7~8월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어가는 폭염 일수가 28.7일,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 일수가 17.3일에 달했다.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8월8일 태풍 ‘더그’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아연 긴장했다. 더그는 타이완에서만 26명의 사망자를 낼 정도로 위력적이어서 1959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사라호’ 이후 가장 큰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한반도에 가까이 온 더그는 뒤이어 발생한 태풍 ‘엘리’의 영향을 받아 세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더그가 적당량의 비로 더위와 가뭄을 동시에 해결한 효자 태풍으로 바뀐 것은 이른바 ‘후지와라 효과’ 때문이다. 후지와라 효과는 일본의 기상학자 후지와라 사쿠헤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후지와라는 1921년 소용돌이치는 흐름이 2개 이상 있고 이 흐름이 근접하면 서로 간섭하는 효과가 생긴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물의 흐름에서 생기는 현상을 연구했는데 이후 대기의 흐름에서도 같은 효과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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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효과로 인해 더그처럼 순한 양이 되는 것은 사실 드문 사례다. 대개는 큰 태풍이 작은 태풍을 흡수해 훨씬 더 큰 태풍으로 변하거나 한 태풍이 지나간 길을 다른 태풍이 따라간다. 2012년 8월27일 태풍 ‘볼라벤’은 서해를 통과하며 한반도에 큰 피해를 줬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30일에는 태풍 ‘덴빈’이 볼라벤의 경로를 그대로 따라오며 한반도를 다시 한 번 강타했다. 덴빈은 원래 타이완을 거친 뒤 서쪽으로 빠져나갔으나 볼라벤의 영향을 받아 타이완에 재상륙한 뒤 한반도까지 와서야 소멸했다.

태풍 ‘마이삭’에 이어 ‘하이선’까지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면서 후지와라 효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볼라벤과 덴빈의 경우처럼 마이삭 영향으로 하이선이 같은 경로로 움직일 경우 또다시 큰 피해가 우려된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어하는 요즘 태풍까지 쌍으로 쳐들어오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부디 막판에라도 태풍이 진로를 수정하든지 아니면 비바람이라도 적게 뿌리기를 바랄 뿐이다.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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