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트럼프의 마지막 패 '큐어넌 음모론'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트럼프, 4년 내내 지지자 편견 조장

中과 무역전쟁으로 고용감소 초래

코로나 사태도 대책없이 기적 바래

이제 남은 카드는 실체없는 음모론뿐

폴 크루그먼폴 크루그먼



최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의 주제는 품위였다. 조 바이든과 민주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기침체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미국을 치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트럼프주의에 대한 경고도 쏟아졌다. 찬조연설에 나선 인사들은 코로나19와 대량 실업사태를 솔직히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전한 전반적인 메시지는 놀라울 만큼 긍정적이었다.

반면 공화당 전당대회는 긍정적 주제를 내걸었지만 극우집단 ‘큐어넌’의 음울한 분위기가 대세를 이뤘다. 그렇다고 도널드 트럼프가 자유분방한 상상 속의 소아성애자 무리로부터 우리를 구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식의 노골적인 주장이 난무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며칠 후면 큐어넌식 경고와 사악한 음모론이 판을 칠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연설을 통해 한결같이 희망과 단합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우리가 두려워할 유일한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취임사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트럼프의 연설은 추한 인종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트럼프 취임 당시 미국의 강력범죄 발생률은 수십년째 줄어들던 중이었다. 미국 대도시의 치안 상태는 과거에 비해 나빠지지 않았다.

사실 현 행정부는 지난 4년 내내 실체 없는 위험을 내세워 국민을 위협하는 패턴을 되풀이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발표와 폭스뉴스를 통해 정보를 얻는 사람들은 수백만명의 불법이민자들이 투표에 참여했다고 믿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이 같은 선거부정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또 그들은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M)’ 시위로 주요 도시들이 화염에 휩싸였다고 믿는다. 물론 일부 예외가 있었지만 시위는 전반적으로 평화롭게 전개됐다.


현 정부가 ‘보이지 않는 위험’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미국 정치는 사회적·문화적 변화의 뒤에 음흉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음모론을 선호한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스타일은 19세기 구교도 이민자들에 대한 집단공포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9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수십년간 이어진 큐어넌 방식의 음모론에 익숙하다. 이처럼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음모론이 요즘 들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이유는 소셜미디어와 자신의 잘못을 ‘불순세력’의 공작 탓으로 돌리는 대통령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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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의 미국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꾸준한 고용 증가와 실업률 감소세로 경제는 전반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었고 최소한 향후 3년간 가시적인 반전은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일부 지역의 경우 성장 약화와 낮은 고용률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살인사건은 감소했으나 마약 관련 사망과 자살, 알코올 중독은 증가세를 보였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트럼프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지역 경제 하락에 대한 그의 대응은 국내 제조업계의 고용감소를 불러온 무역전쟁이 전부였다. 그 외의 다른 정책이라고는 법인세 인하에 초점을 맞춘 감세가 유일했지만 이 역시 기업투자로 연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마약성 진통제 남용문제와 관련해 트럼프가 내놓은 대책은 수백만명의 미국인들로부터 건강보험을 빼앗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 이 고약스러운 전염병은 트럼프 취임 이전 10년간 발생한 살인사건 희생자들의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가끔 돌팔이 처방을 제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코로나19가 어느 날 갑자기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잠꼬대 같은 주문과 현실부정으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트럼프는 미국의 실질적인 필요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와 그의 수하들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지지자들의 편견을 조장하고 그들의 ‘엘리트’ 거부반응과 맞물려 반향을 일으킬 만한 가상의 위협을 지어내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이 모두가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면 그건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만한 전술은 아니지만 유권자들을 충분히 겁먹게 만들고 투표방해와 대표성에 문제가 있는 선거인단 제도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트럼프는 가까스로 권좌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이런 식의 필사적인 전략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에게 남은 카드는 그것뿐이다. 그가 기대를 걸 곳이라고는 두려움 그 자체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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