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상처만 남긴 ‘의대정원 확대’ 결국 중단

巨與 등에 업고 정책 추진했지만

“의사 파업에 국민 피해” 비판 거세

‘원점서 재검토’ 사실상 백기투항

박능후(오른쪽) 보건복지부 장관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정협의체 구성 합의서 체결식’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이호재기자박능후(오른쪽) 보건복지부 장관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정협의체 구성 합의서 체결식’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한정애(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원점 재검토 등을 내용으로 한 정책협약 이행합의서에 서명한 뒤 인사 중이다. /연합뉴스한정애(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원점 재검토 등을 내용으로 한 정책협약 이행합의서에 서명한 뒤 인사 중이다. /연합뉴스


정부 여당과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4일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공공의대 설립과 여당의 총선공약인 의대정원 확대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4일까지 15일째 이어온 집단휴진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다만 전공의·전임의 등의 모임인 ‘젊은의사비상대책위원회’는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해 파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혀 당분간 여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여당이 이번 사태를 봉합하는 과정에서 의료계라는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를 100% 수용하며 물러선 만큼 정부 여당의 개혁추진 동력도 상당 부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공공의료 확충 정책과 관련한 입법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하는 내용 등을 담은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에는 의협이 철회를 요구했던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이행 중단 및 원점 재검토가 포함됐다. 사실상 의료계의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진 셈이다. 대신 의협은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진료현장에 복귀하기로 했다.




0515A01 정부-의협 합의문 주요 내용


합의문이 공개되자 전공의들은 의협과 정부 여당 간 합의에 반발하며 파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공의들에게 “전공의의 단체행동 중단은 대전협의 의결 이후 대전협이 결정할 것”이라며 “동요하지 말고 대전협을 믿고 지침을 따라달라”고 파업지속 방침을 밝혔다.

무리하게 공공의대 설립 등을 추진한 정부 여당에 대한 거센 비판이 제기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금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뭐든지 (생각한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후 너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여당 책임론을 제기했다.

불통이 禍 불러...文정부 국정동력 ‘흔들’
현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한 ‘공공의대 설립’과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인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정부 여당 및 의료계가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수행 동력도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해당사자와의 협의 및 여론 수렴 등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은 결국 국민의 불편 등 각종 부작용만 야기한 채 무기한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가 입증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 여당이 이해당사자·야당 등과 충분한 협의 없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책이 공공의대 신설, 의대 정원 확대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이해당사자의 힘에 여당이 사실상 백기투항하면서 다른 정책에 대한 불만도 곳곳에서 거칠게 쏟아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서경 펠로(자문단)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이 시급한 상황에서 의료계가 완강하게 반대하는 정책을 정부가 추진한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공청회를 여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수렴한 뒤 정부와 의료계가 사전 협의를 충분히 하고 정책을 추진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이 누가 있느냐”며 “그런데 지금 여당이 꺼낸 정책은 10년 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얘기를 꺼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정책협약 이행 서명식에 참석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같은 맥락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 회장은 “지난 7월 초부터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강행으로 우리 의협의 14만 회원이 큰 혼란을 겪었다”며 “미리 의협과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친 뒤 이런 정책을 추진했더라면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 등의 정책 추진이 국민의 불편 등 상처만 남긴 채 사실상 표류하게 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다른 국정과제 추진 동력도 상당 부분 위축될 것으로 진단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도 그렇고 탈원전도 그렇고, 여당이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고 추진하는 정책이 어디 한둘이냐”며 “이번에는 보건의료 정책에서 탈이 났는데, 다른 데서도 탈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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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슈도 불만 쏟아질 듯
실제 정부와 여당이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정책은 부동산 시장 안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당이 7월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임차인 보호 등을 목적으로 ‘임대차 3법’, 강화한 종부세법 등을 국회에서 단독 처리했지만 시장에서 부작용이 나타나며 임대인은 물론 임차인에게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법안의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탈원전을 놓고도 정부 여당과 업계, 여당과 야당 간 대립각이 여전하다. 국민의힘 경남도당은 지난달 31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그린뉴딜 정책을 언급하자 논평을 통해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며 승승장구하던 두산중공업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경영난에 빠지면서 지역경제가 붕괴됐고, 흑자를 내던 한국전력도 지난해 1조3,566억원의 적자를 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반드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국민적 합의 없이 탈원전이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둘러싸고도 여야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7월 공수처법이 시행됐지만 정치권은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의힘은 2월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심판의 결과를 지켜본 뒤 야당 몫인 2명의 추천위원을 선임한다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다. 향후 출범할 공수처의 정치적 편향성을 우려하는 법조계 일각의 목소리도 여전히 나온다.

좋은 정책도 일방적 추진은 옳지 않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7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불을 지핀 행정수도 이전,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인천공항공사를 첫 방문지로 정하며 강조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등도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당은 정부가 아니고 공식적인 정책결정기관도 아니다”라면서 “레임덕 얘기는 정부와 의료계 갈등을 여당이 나서 풀면서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이해당사자·야당 등과 협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의료계가 정부여당과 공공의료 확충 정책과 관련한 협상을 타결한 4일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의료진이 의과대학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의료계가 정부여당과 공공의료 확충 정책과 관련한 협상을 타결한 4일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의료진이 의과대학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임지훈·우영탁·박진용·김혜린기자 jhlim@sedaily.com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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